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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Dec 04. 2019

매일매일 쓰는 것만 두기

살림살이의 기준

산더미 같은 살림살이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다 한 후, 입주 청소를 하면 공간이 갓 목욕한 아이처럼 뽀얀 얼굴이 된다. 이삿짐이 들어오기 바로 전. 이때의 모습이 심미적으로는 가장 아름답다.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 생활이 물씬 느껴지는 소품들이 등장한다. 수세미, 걸레, 고무장갑, 행주. 특히, 핑크색 고무장갑은 혼자 돋보이길 좋아한다.  


  아무리 살림살이를 계산해 수납장을 잔뜩 짜 넣어도, 이삿짐이 한 번에 다 들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가 계산을 잘 못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데에 그렇게 많은 재고가 필요한 건지 늘 의심스럽다. 


“수납이 고민이야.”

“수납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현장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정리해서 넣을 정도의 물건이라면, 다시 말해 매일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면 단호하게 정리한다. 그냥 버리기 아까우면 당근 마켓에서 팔아, 피자를 한 판 사 먹는 편이 낫다. 집안의 서랍장과 장롱은 100% 가득 채우면 통기가 되지 않아, 흐름을 막는다. 그런 공간은 해충이 좋아한다. 모든 수납장은 50% 미만으로 채우는 걸 기준으로 삼는다. 냉장고나 냉동고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기준 

  살림살이를 들이는 데에는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사용하지 않을 것에 비용을 집행할 필요는 없지 않나. 게다가 들어앉아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 우리가 그 멍텅구리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2천만 원이라 치면, 다섯 평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잡동사니를 위해 약 1억을 쓰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자동차는 약 5평, 세탁기는 0.1평. 냉장고는 0.3평이 필요하다. 


  옷장에 옷들이 눌려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안 입는 옷들을 골라내 모두 버렸다. 옷걸이가 70개 넘게 비워졌고, 옷장은 눈에 띌 만큼 헐거워졌다. 충격적인 건 어떤 옷을 버렸는지도 전혀 기억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 옷들을 관리하기 위해 공간과 에너지를 썼다니. 먼지 알레르기에 재채기하느라, 버리는 것도 힘들었다. 뭔가 새로 사기 싫어졌다. 


  큰 냉장고나 냉동고도 필요한 건가 싶다. 요즘엔 잠들기 전 새벽 배송으로 주문하면 신선식품들이 내 집 문 앞에 오지 않나.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받아 볼 수 있는데, 그건 물류센터의 냉동고와 냉장고를 빌려 쓰는 셈이 아닌가. 


  어떻게 해도 대체재가 없는, 나의 시간 자원이 점점 더 소중해진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내가 원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래서 더 비우고 싶다. 살림살이도, 내 삶도. 하고 싶은 일은 더 잘하고 싶다. 나의 기준은 그렇게 정제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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