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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Nov 06. 2019

열세 살, 알바생

그렇게 끝까지 말하렴

  지난 10월엔 서울건축비엔날레 행사 중 하나로 윤현상재가 기획, 윤영하는 '서울도시장'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우리 브랜드 더리빙팩토리에서도 참가하기로 했다. 행사 준비를 하다 보니, 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6학년 아들의 덩치는 이제 나만큼 자랐고, 장을 보면 자진해서 번쩍 들고 올 만큼 기운도 세 졌다. 그래, '이만큼 자랐는데 너도 거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아들. 이번 주말에 마켓이 있는데 너도 가자."

"그러면 시급 줄 거야, 엄마?"

"일을 하는데, 당연하지."

"얼마 줄 건데?"

"시간당 오천 원."

"가만있자. 최저 시급이 팔천..."

"아들, 그런데, 너 어른만큼 잘 할 수 있어?"

"아니."

"그런데, 왜 그만큼을 달라고 하지?"

"어어, 알았어. 엄마. 오천 원. 그거 모아 게임 아이템을 사야지."

"그래라. 너도 가서 도와."


  마켓에 나온 아들은 봉투에 홍보물을 넣는 것부터 시작한다. 곁눈질로 보니, 성실하게 하고 있다. 옆에서 삼촌, 숙모에게 제품 판매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멜라민수지 제품에 대한 설명도 듣고 있고, 가격도 외우고 있는 모습이다. 진지하다. 그럼, 그럼. 먹고살기 위한 노동은 숭고하다.


  옆에 서 있는 내게 와 귓속말로 이야기한다.

"엄마, 엄마가 디자인한 제품이 예쁜가 봐. 사람들이 많이 사시네. 고마우시다."

"색감이 좋다고 그러시는데?"

현장에서 오가는 수많은 상호작용.


  나는 약속대로, 집에 돌아와 시간당 오천 원을 지불했다. 신이 나서 게임을 하겠다고 한다. 엄마가 게임 시간을 한 시간 삼십 분을 주겠다고 말했다면서. 미안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게임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아들은, 엄마가 분명히 그랬다고 말하고, 나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인가.


  마켓에 다녀오고 이미 체력은 고갈되었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이 순간을 피하면 안 된다는 직감이 움직인다. 시급 오천 원을 주겠다는 것은 양쪽 모두 기억하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게임 시간을 주겠다는 것은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아들은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다. 양쪽이 바득바득 우겨대는 동안 한 시간 넘게 흘렀다. 어른 세계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구두 계약의 문제점이다.


"아들. 어른 세계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 서로 말이 다를 수 있으니, 늘 기록으로 남기는 게 좋아. 수첩에 써서 확인을 받던지, 카톡을 보내 놓던지. 엄마는 네가 이런 일이 늘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평소에 게임으로 보상해, 안 해?"

"안 해."

"엄마가 평소에 약속을 지켜 안 지켜."

"지켜."

"그러니까 더욱 이상하잖아. 너도 거짓말을 하진 않으니까, 이 일은 어떻게 된 건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에 이런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 네가 생각해도 엄마가 저렇게 순순히 허락해 줄 리가 없는데 싶은 이야기는 수첩을 가져와서 기록하도록 하자. 그럼 오늘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지금 9시도 넘었으니까, 게임 아이템을 사서 30분만 했으면 좋겠어."

"시간을 정확하게 지킬 수 있어?"

"응."

"그래, 그러자."


  내게 기울던 시소는 이제 아들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내 마음 한편으로는, 아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끝까지 협상을 포기하지 않는 게 고맙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녹록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엄마와 협상하듯 끝까지 이야기하면 좋겠다. 모든 일이 다 될 거라고 약속할 순 없지만, 아마 되는 일이 더 많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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