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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Feb 26. 2020

혼자 떠난 여행은 어땠어?

샤를로트 페리앙처럼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며

  너도 알다시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혼자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었어. 그 얘기는, 한 번도 혼자 낯선 곳에서 자 본 적이 없다는 의미이지. 어른이 혼자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건,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었는데, 정확하게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 어쨌든 집을 떠났을 땐, 늘 일행이 있었어. 자의 반, 타의 반 정도 되는 것으로 해 두자.


  어쩌면, '여자가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배기도록 듣고 자라,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 생각해 보면, '여자가 어떻게 그런 걸 하니?', '여자가 왜?’, ‘여자는 그런 거 안 해.’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어. 핑계 같지만, 덕분에 꼭 보고 싶은 게 있어도, 꼭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혼자 어떻게 해… 싶어 스스로 포기한 적도 종종 있었던 것 같아.


  금호미술관에서 열렸던 바우하우스와 현대생활 전에서 샤틀로트 페리앙을 만나기 전까지, '혼자 하는 여행'은 잊혀진 길이었어. 갈림길에서 저 편에 있는, 그런 선택지가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까마득한 일이었지. 하지만, 샤를로트 페리앙이 너무 궁금했어. 그녀의 주방을 만났을 때, 나는 이 디자인은 여성의 디자인이 틀림없다고 확신했어. 살림을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이었거든. 1920년 대엔 살림하는 남성은 거의 없었으니까. 너무 궁금했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남성 주류의 디자인 계에서 자기 이름으로, 자기 일을 했을까 싶어서.


  마침 파리에서 전시 중이더라. 코로나19 때문에 가족들에게 이야기 꺼내기 조차 미안했지만,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 보고 싶은데, 포기한 나에게, 나를 존중하지 않는 나에 대해. 남편이 아들과 함께 보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나는 정말로 혼자, 내 마음과 내 감각을 한 곳에 모으고, 완전히 집중해서 보고 싶었어. 그래서, 혼자 가겠다고 했어.


  다들 걱정했고, 사실은 나도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어. 하지만, 전시 제목처럼 샤를로트 페리앙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탐험하게 했어. 숲 가운데 들어 앉은 프랑크 게리의 건물을 보는데, 정말 가슴이 뛰더라. 비로소 살아있는 것 같았어. 이번 전시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픈 한 시간 전에 ZEN MEDITATION이라는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뭔지도 모르고 신청했어. 조금이라도 더 그 공간에 머물고 싶어서.


  30~40명이 모여, 마카롱 같은 핑크, 옐로우, 그린, 블루 방석을 깔고 앉은 홀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노소가 모여 체험 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있었어. 세대와 성별이 아니라, 관심사에 따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 나는 그게 부럽더라. 10대이건, 70대이건, 내가 관심있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거야. 그곳에 누가 있던 지 전혀 개의치 않아. 모든 프로그램이 불어로 진행되어,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눈치껏 따라할 수 있었어. 선생님을 따라 호흡법을 연습하고, 콧물이 나올까봐 다 같이 코를 풀고, 우크렐레 연주에 맞춰 합창하던 순간, 내 안의 양막같은 게 툭 하고 터지는 느낌이 들었어.

  전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좋았어. 나무로 만든 가구와 주방을 직접 만지고 사이즈도 재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았어. 직접 가서 본 그녀의 평생의 작업은 생각보다 더 방대하고 자유로웠어. 보통 디자이너들은 익숙한 소재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거든. 디자이너 뿐 아니라, 대부분의 직업인들이 그렇지. 칼만 해도 자기 손에 익은 걸 주로 사용하게 되잖아. 그런데, 샤를로트 페리앙은 유리, 금속, 가죽, 나무, 패브릭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하고 싶은 걸 해. 1920년~30년대에.

  그녀의 작업을 4권의 책으로 정리했는데, 책 가격만 410유로였어. 무게는 약 20킬로그램쯤 나갈 것 같았고. 한참을 망설이다 모두 다 구입해서, 한국까지 들고 가겠다 결심했는데, 전시 막바지여서 그런지 영문판은 품절이더라. 불어를 알면 망설이지 않고 사왔을텐데.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는 것은 늘 자유롭지 않다고 느껴. 안타까웠어.

  위험하진 않았냐고? 낯선 곳에 가면 조심하라고 하잖아. 누가 나를 지켜보다 가방을 채 달아 날 것 같잖아.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에게 관심이 없어.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위험하다고 느낀 순간도 없었어. 뭔가 잘 모르겠으면 예쁘게 갖춰 입은 남성들에게 물었어. 도움을 청하는 나를 외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는 친절하다고 생각해.


  24시간을 완전히 나에게 쓰며, 집중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여행. 늘 꿈꾸던 여행이었어.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어떤 종류의 성취감 같은 게 느껴졌는데, 남들이 보기엔 별 것 아닐지 몰라도, 내겐 한 번도 안 해본 큰 일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내게 둘러 진 유리 장벽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느낌이야. 다음에 또 혼자 떠날 거냐고? 응. 그렇지만, 늘 혼자 떠날 것 같진 않아.


  일행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함께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내가 폭주하고 있을 때,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제동 장치같아. 보고 싶은 것에 열중해 하도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어지러워 쓰러지나 싶을 때가 있었어.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앞선 거지. 일행은 수평계 같은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세상 모든 일엔 장단점이 있어, 그지? 다음엔, 우리도 같이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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