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Mar 04. 2020

망설여 질 땐, 그냥 하고 본다

모네의 수련 앞에서의 작은 음악회

  전날 파리에 도착해,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샤를로트 페리앙의 전시를 보고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 4시가 되었어. 전시를 보는 것에만 완전히 하루를 배정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여유있었어. 나가서 뭔가 한 개 더 보고 올까, 그냥 쉴까. 지금 나가면 깜깜할 때 들어올 텐데 너무 위험하진 않을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머 그리 위험하겠어. 그냥 나가 보자. 이런 마음이 한참 동안 엎치락 뒷치락 했어.  


  비행기 타고 12시간 날아와, 파리 시간으로 새벽 1시 30분에 일어나 일상 생활을 똑같이 했으니, 몸의 컨디션으로 보자면 지치기도 했을 거 아니야. 좀 쉬고 싶기도 하잖아. 수백 번을 망설이고 있었어. 그런데, 구글이 친절하게, 오르셰 미술관은 목요일 하루는 오후 9시 45분까지 연장 전시한다고 알려주더라. 수 목 금 토 일 일정인데, 다른 날은 다 여섯 시까지야.   


  내가 말한 적 있지? 내가 언제나 좋아하는 장소들이 있다는 거. 도서관, 서점, 갤러리, 식물원, 미술관, 벼룩시장. 다른 곳은 짧은 일정에도 다 하나씩 넣었는데, 루이비통 재단의 전시를 보니까 미술관은 따로 갈 생각을 하지 못 했었거든. 몰랐음 모를까, 알았는데 어떻게 해......? 그냥 가기로 마음을 먹고 오즈모 포켓 카메라와 짐벌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어.  


  파리의 대중교통은 안내방송이 없어. 그러니 주의를 환기하고 계속 내릴 역을 체크해야 해. 열차가 역에 서면 탑승자가 문의 열림 버튼을 누르거나, 손잡이를 잡아 당겨 열어야 열려. 만약 문이 열리지 않는 칸이 있다면, 아무도 내리거나 타지 않는다는 의미야. 낯설었지만,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해. 내리거나 타는 사람도 없는데 굳이 문을 열고 닫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오르셰 미술관은 19세기 회화를 중심으로 구성된 미술관이야. 파리를 다섯 번 째 왔으면서도 오르셰 미술관을 가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아.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데, 만약 이번에도 오지 않았더라면 너무 섭섭했겠지. 그림을 감상하기에 완벽한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네, 모네, 폴 쉬낙, 르느와르, 반 고흐의 회화 작품들을 실컷 보면서 이번엔 어떤 그림이 나에게 걸어오나 가만히 내 마음을 느꼈지.  

  반 고흐는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박물관에서 보는 편이 훨씬 풍성했고, 오르셰에서는 모네에게 관심이 피어났어. 하늘을 표현하며 파란 색 옆에 핑크 색을 더하는 걸 보면서, 섬세한 표현과는 다르게 색 표현은 과감하다고 느꼈거든. 그럼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궁금해지잖아. '한국에 돌아가면 모네를 좀 공부해 봐야겠네' 이런 생각을 하며 모네의 수련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뭔가 부산해지면서 피아노가 이동 배치 되는 거야.

  사람들이 자리 잡고 앉는 걸 보니, 피아노 연주회가 열리는 모양이야. 나도 서서 함께 기다렸어. 오르셰 미술관에서의 작은 음악회라니, 그것도 오늘 훅 다가온 모네의 그림 앞에서. 어떤 기분일지 너무 궁금하잖아. 군살 없는 몸에 깊은 숲색의 수트를 입고, 단발머리를 하나로 묶은 남성이 동영상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어. 옆엔 긴 생머리의 여성이 우아한 몸짓으로 서서 자리를 가다듬고 있고.


  피아노 연주만 열리는 줄 알았는데, 소프라노가 동반하는 음악회였던거야.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숲속 새소리 같았고, 소프라노의 음색은 마치 숲속 위로 펼쳐지는 햇살 같았어.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소리에 빠져봤거든. 샤도네이 와인 마신 것처럼 몸이 흔들렸어. 모네의 수련 앞에서 피아노와 소프라노라니.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어. 여행은 늘 우연이 기다리지. 마치 우리 인생처럼.

작가의 이전글 혼자 떠난 여행은 어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