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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Feb 20. 2020

공부는 끝이 없다

  작년에 식물을 아름답게 연출하는 방법을 더 알고 싶어, 국가자격증인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기능사 자격증은 겨우 그 업무를 시작하는 기술 정도를 갖추었다는 의미라고 하지만, 하고 있던 일에 새로운 기술이 더해지니 확실히 업무 능력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지만,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가 봅니다.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에는 꽃꽃이와 부케 시험이 출제되는데, 부케가 특히 어려웠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꽃대를 잘라 철사를 감고, 그걸 다시 테이핑한 다음에, 모양을 만들어 리본으로 감아야 했거든요. 일과를 시작하기 전 꽃시장에 다녀와야 하루의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으니, 새벽 다섯 시쯤 꽃시장에 갑니다. 연습 과정에서 열 손가락의 끝은 모두 물집이 생기고, 한 번씩 다 벗겨졌습니다.  


  그래도 입시처럼 무거운 시험은 아니라서, 꼭 붙어야만 하다는 강박이 없으니 비로소 뭔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기능사는 기술을 보는 시험이라, 시험 준비를 시작할 때와 끝마칠 때의 손이 움직이는 속도가 스스로 느끼기에도 달라져 있거든요. 함께 한 동료들의 손을 보니 확실히 그랬습니다. 무엇이든 노력은 정직합니다. 근육은 움직인만큼 길이 들고, 속도도 점점 더 빨라집니다.  


  부케를 만드는 일이 식물을 아름답게 연출하는 일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까요? 꽃꽂이는 같은 꽃을 가지고 꽃을 꽂아도 사람마다 모두 다른 꽃꽂이가 나옵니다. 열이면 열,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그 점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예술은, 모두 다 달라 예술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름다움의 규칙은 대동소이합니다. 통일, 비례, 균형, 대칭, 리듬감을 지켜주면 됩니다. 그 규칙은 꽃꽂이나 플랜테리어, 모두에 적용됩니다.  


  올해는 실내건축기능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주로 3D 디자인 프로그램을 쓰기 때문에, 손으로 도면을 그리는 시험이 왜 필요한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아날로그로 소통하는 것이 빠를 때를 종종 경험합니다. 전기가 없을 때, 마우스가 없을 때, 노트북이 없을 때 고객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냅킨과 종이가 필요할 때도 있고, 종이와 연필일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점점 더 잘 하고 싶어지는 공간 디자인 비즈니스에서 해당 자격증이 꼭 필요합니다.  


  실내건축기능사는 필기와 실기가 있습니다. 필기는 실내건축에 대한 기본 지식을 다룹니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이면 합격이고, 시험은 컴퓨터로 치러집니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기능사 시험은 한 시험장에 30명의 인원이 입장하고, 보통 2인용 책상을 씁니다. 옆 자리에는 각기 다른 기능사 시험을 보는 사람이 앉습니다. 실기 시험은 5시간 30분 동안 도면을 그립니다.  


  저는 실내건축 업무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실내건축사 필기 시험은 책으로만 공부했습니다. 5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두 번 보았고, 기출 문제는 최근 5년 분을 다 풀었습니다. 그리고 CBT 모의고사 8회분을 다 풀었습니다. 시험 당일 코로나19 바이러스 덕분에 걱정이 되었는데요, 주최 측에서 마스크 착용해야만 입실을 시켰고, 전원 손소독제로 소독한 후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옆자리에는 20대 남학생이 앉았습니다. 큰 검정색 배낭을 메고, 안경을 쓰고 온 남학생은 연습장과 연필을 쥐고 입실합니다. 보통 마지막 순간까지 한 글자라도 더 머릿속에 구겨 넣으려는 게 시험장의 풍경인데, 이 친구는 책을 꺼내지도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자신이 있거나, 포기하거나 두 가지 경우인데요, 보통 어른이 되어 자기 돈을 내고 치르는 시험에서 포기는 잘 없습니다. 본전 생각이 나니까요.  


  시험이 시작되니, 예상했던 것처럼 이 친구는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속도가 거의 일 초에 한 번씩 인 것 같아요. 저는 덩달아 마음이 급해집니다. 시험 화면이 왼쪽 상부 한 페이지만 나오게 설정이 되어 있어, 남학생 쪽으로 몸이 기웁니다. 빠른 페이스에 더 말리는 것 같아요. 아니지, 나는 내 속도대로 가면 되지. 다시 한 번 침착하게 침착하게를 되뇌입니다.


  제가 한 번 문제를 푸는 동안, 옆자리 남학생은 벌써 풀고 퇴실했습니다. 저는 이제 신경을 쓰지 않고, 찬찬히 검토를 시작합니다. 검토를 할 때 보니 시험지의 화면을 조정할 수 있는 사각형 버튼이 있습니다. 2열 종대로 정렬을 다시 하고, 연습문제 풀었던 조건과 동일한 환경에서 다시 검토를 시작합니다. 몇 개는 오답을 정정했습니다. 한 번 더 보면 오류를 줄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과감하게 종료버튼을 누릅니다. 두근두근. 점수는 83.3점. 합격! 예상보다 잘 찍었습니다.  


  퇴실하면서 보니, 제가 두 번째 퇴실자입니다. 아니 옆자리에 앉았던 똑똑한 학생 덕분에 저도 빠르게 더욱 집중해서 풀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가 세대를 넘어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동시대적인 언어로 소통할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 아닌가 합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끊임없이  노력 하고 계신 분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쨌든 공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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