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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Mar 18. 2020

코로나 19, 그래도 생활은 계속된다

재난으로 바뀌는 생활 방식

그래도 생활은 계속된다   


  아사히 신문 기자였던 아나가키 에미코 작가는 50세 되던 해, 잘 다니던 신문사를 퇴직하고 자발적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하는데요, 이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퇴사 열풍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둘리 친구 마이콜 같은 파마 머리를 한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는 아프로 헤어의 예찬론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니 수입이 줄어, 예전 같은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월세가 저렴한 도쿄의 작은 아파트로 생활 터전을 옮깁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도쿄에서 냉난방 없이, 온수도 없이 생활을 한다는 점입니다. 겨울엔 이틀에 한 번씩 동네 목욕탕에서 뼛속까지 데우고, 뜨거운 물을 담은 탕파 주머니와 핫팩으로 추위를 견딥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라는 책으로 남겼습니다.

  가열기구라고는 부탄가스를 넣어 사용하는 1구짜리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전부입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는 야채를 미리 썰어 햇빛 아래 두고 외출하면, 해가 ‘반조리’ 해 준다고 합니다. 뜨거운 햇살 덕에 꾸덕해진 야채는 수분 함량이 적어 맛이 진해지고, 더 빠르게 배어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간단한 조리법으로도 다양한 요리가 가능해,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요리 에세이를 썼습니다.

  심지어는 냉장고도 없습니다. 먹거리의 저장을 위해서는 에도 시대의 조리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합니다. 밥을 해서 나무로 된 전용용기에 보관하면 하루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이틀 정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반찬으로는 쌀겨 된장에 야채를 절이는데,  발효시킨 된장의 미생물이 야채에 배어 드니 유익균 마이크로 바이옴이 가득한 건강한 식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재난이 두렵지 않다


  2018년 한국에서 열린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의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큰 키에 군살이 하나 없는 마른 몸의 작가는 아프로 헤어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강연했습니다. 매일 화장을 하고 지우고, 거기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환경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해야 하나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책 속의 말들이 그대로 몸으로 빚어져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011년 일본을 강타한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살림살이가 흉기로 돌변하는 재해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무리 대비해도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이때 일본에는 미니멀리즘이 등장해, 붐을 이루게 됩니다.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 등의 책이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출간된 책입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 역시, 이 재난을 보며,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전기를 이용한 기구들이 점점 늘어나고, 전깃줄이 엉킨 모습이 마치 주사 줄과 각종 호스로 연결된 중환자와 같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강연회 끝에서는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는 매일매일이 재난 상태와 다름없어서, 나는 더 이상 재난이 두렵지 않다.라고 농담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재난은 벌써 우리들의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 일 역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해 사라질 생물다양성에 코로나 19가 연결되어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린, 어쩌면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처럼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며, 천천히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격리된 봄날보다 나을 테니까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ellnKG29-2GNZp0MoQ8r4Q?sub_confirmatio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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