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틈의 소나무


암밴드를 주문했다. 스마트 폰 없이 달리는 것은 벌거벗은 듯 자유롭지만, 한편으로는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놓친다는 아쉬움이 있다. 어제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무언가를 지나쳤는데, 하루 지난 오늘은 그게 무엇인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완전히 잊었다. 아깝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늘 글을 쓰고 싶었다. 작가가 되려면, 일상생활을 멈추고, 책상 앞에 앉아 하루 열 두 시간씩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상을 멈출 수 없으니, 그건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덟 번 읽은 나의 인생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그저 매일 쓰기만 하는 것으로도 ‘작가’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저 매일 쓰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쓰는 연습을 하다 보니, 꼭 책상 앞에서 열두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일상 속에서 지나가는 순간을 잘 기록해 두면, 쓸만한 한 편의 글로 남길 수 있었다. 만약, 어제 기록하고 싶었던 무엇인가를 사진으로 남겼다면 나는 아마 진주 같이 좋은 글을 한 편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밴드가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도 쓸만했을 그 글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날아가버린 영감은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야지’ 하지만, 절대로 다시 생각나는 법이 없다. 흘러가버린 시간처럼,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 지나고 후회해도, 떠나간 버스와 다름없다.

암밴드를 왼쪽 팔에 묶는다. 스마트폰을 끼우는 형태의 암밴드는, 가방에서 꺼내거나 몸을 굽히지 않고도 바로 조작이 가능해 편리했다. 찍찍이 테이프로 붙였다 떼는, 쉽고 빠른 착용도 마음에 들었다. 나이키 런 클럽 앱에서 first speed run을 선택해, 아이린 코치의 음성으로 시작한다. 5분 천천히 달리고, 1분씩 5킬로미터 주행의 속도로 달려 8번의 인터벌을 반복하는 세션이다.

아이린 코치가 하라는 대로, 1분을 빠르게 뛰고, 멈취 1분 동안 두 팔을 머리에 올려 호흡을 가다듬는다. 오늘은 빠르게 뛰고 싶었다. 귓가에 부딪히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묻어 날아간다. 우린 누구나 코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자, 여러분은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더 하게 해 주는 목소리.

아이린 코치가 마지막 세션을 전속력으로 달리라고 한다. 여러분은 더 강해져 있을 거라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두 팔에 힘이 들어가고, 내딛는 보폭은 조금 더 넓어졌고, 고관절은 짱짱하다. 첫날 달리기가 떠 오른다. 흐느적대는 오징어가 뛰려고 애쓰는 것 같았는데. ‘자, 이제 세션을 마쳤습니다~.’ 마침 그즈음,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틈에 자리 잡고 혼자 자라는 소나무.

유전자는 역경을 딛고 진화한다고 했다. 혹독한 조건에서 식물은, 유전자를 변형해 돌연변이를 만들어 낸다. 지금 나뿐 아니라, 인류가 코로나 19로 여러 가지로 새로운 도전에 처해있지만, 우린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어 내고, 진화할 것이라고, 바위틈의 소나무가 몸으로 보여준다. 고마운 암밴드. 덕분에, 소나무를 기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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