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

작년 이맘때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에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유키 구라모토의 인터뷰를 보았다. 떠오르는 일이 있다.


옛날 옛적, 소니 시디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있던 남자 친구가 "이 음악, 참 좋아, 들어봐." 하며 이어폰 한쪽을 빼 건네주었던 일이 생각났다. 마림바 소리처럼 청아하게 들리는 피아노 연주곡이었다.


음악을 듣는 동안, 나는 시폰 원피스를 입고 바람에 스커트 자락을 나풀거리며, 연두색 새 잎으로 덮인 들판을 걷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구름이 낮게 드리운, 서글픈 느낌. 그 음악이, 유키 구라모토가 1998년 발매했던 음반 Reminiscene에 수록된 <로망스>였다.


인터뷰에서 유키 구라모토는 백건우와 조성진을 급커브에서 200킬로미터로 질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본인은 60~7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는 평범한 사람으로 낮춘다. 우열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정하는 쿨함이 느껴졌달까.


그러면서도 70세가 되면 완벽한 연주를 할 거라며, 15년 전보다 지금 더 잘 연주하고 있다 말한다. 그 자신감에서 부지런한 몸과 땀방울이 느껴졌다. 그는 67세이던 작년 봄, 내한 20주년 기념 전국투어를 했다. 공연기획사인 크레디아 오피셜 인스타그램에 의하면, 유키 구라모토는 작년 5월 한 달 동안 청주, 일산, 제주, 목포, 구미, 대구, 오산, 대전, 광주, 양산, 춘천, 원주, 서울을 오가며 12번의 공연을 마쳤다.


지금 그곳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시작할 용기가 없어진다. 그렇다고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을 나중으로 미룰 필요도 없다. 다름을 인정하고,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저 시작하면 될 것이다. 내 안의 소리에 반응하고, 내가 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생긴다.


쿨한 이 시대의 정서에 열심히 노력하는 건 촌스럽게 여겨진다. 달리기가 좋으니까 달리지만, 숨이 가빠 기관지가 찢어질 것 같고, 다리가 쥐가 날 것 같은 걸 견뎌야 근육이 자라는 걸 어떻게 하나... 우리의 생물학적 몸뚱이는 그렇게 생겨 먹었다. 안 쓰면 퇴화한다. 뇌 근육도, 손 근육도, 마음 근육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곡가로 일하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유키 구라모토는 하루 종일 피아노를 두들기는 일을 하며, 매일매일 2시간 연주 연습을 하는데도, 그걸 '너무 적어서 부끄럽다'라고 한다. 1999년부터 한국에서의 모든 연주회 티켓을 매진시키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주로 사랑받는 분께서. 나도, 어딘가 부끄러워진다.


무인양품의 디자인 고문인 하라 켄야는 <포스터를 훔쳐라+3>라는 책에서, '글의 매력은 매끄럽고 거칠고 가 아니라 읽는 이를 얼마나 강하게 촉발하느냐에 달렸다'라고 했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될 것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쓰면 될 것이다. 70세쯤엔 완성될 거라 믿으며.


http://linktr.ee/jaekyung.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