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달리기
끼니로, 15밀리미터 두께의 손바닥만 한 호밀빵 한쪽을 구워, 크림치즈와 45도 딸기잼을 한 스푼 씩 발라, 콩물이나 두유 한 컵을 곁들여 함께 먹는다. 이렇게 먹어도 일상을 처리하는데 충분하다 느낀다. 몸도 가볍고, 컨디션도 좋다. 출출하다 싶으면 냉동 블루베리에, 저지방 우유를 붓고, 메이플 시럽을 약간 넣어 슬러쉬처럼 먹는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엔, 뭔가 조금 더 거한 음식들을 먹게 되는데, 확실히 컨디션이 흔들리는 걸 느낀다. 어제도 저녁으로, 물국수와 빈대떡을 먹은 것 까진 괜찮았다. 아들이, 한 번에 6개씩 만 구입할 수 있다는 도넛 집에 줄을 서서, 엄마가 좋아하는 바닐라빈 도넛을 사 왔다. 먹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바닐라빈'에서 흔들렸다. 맛만 볼까 했는데, 결국 한 개를 다 먹었다.
아침 거울 속 내 얼굴은 퉁퉁 부어 있다. 얼굴만 부었을까. 아침, 몸도 무겁다. 달릴까, 말까, 고민은 또 시작된다. 망설여질 땐, 일단 하고 본다. 더 귀찮은 쪽을 선택하는 건, 습관이다.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이 앞에 놓여 있을 땐, 안 해 본 일, 더 어려운 일을 고른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도 몸이 부대낀다. 아이 참. 적당히 먹었어야 했는데. 호흡이 어제보다 짧고, 두 다리는 아톰 다리처럼 뻣뻣하다.
여름은 미세먼지가 적은 계절이다. 달리기 좋은 계절이다. 풀이 내 키만큼 자란 천변을 따라 뛰면서, 신록의 향기가 짙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초록을 한 모금 마시니, 어제 뵌 작가님이 떠 오른다. 머리카락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였지만, 허리는 꼿꼿하고, 종아리는 단단하다. 어느새 내 눈은 그분을 따라가고 있었다.
비오킬을 들고 식물 잎에 뿌려주시다가, 어느새 물조리개로 화분에 물을 주고 계시나 싶더니 금세 또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 보시면서, 화분의 자리를 바꾸고 계셨다. 빠르지만 소리가 없다. 춤을 추듯 우아한 움직임. 한 마리 학을 보는 것 같다. 단단한 몸은 참 아름답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벚나무를 지나쳤다.
그래, 뭐, 오늘은 시간이 있으니까 좀 더 달려 보는 거야. 금세 소나무가 나온다. 소나무 아래 멈춰 서서,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본다. 뾰족한 솔잎 옆으로 은행나무 작은 잎, 벚나무 잎이 보인다. 서로 다른 잎들이 보여주는 질감의 차이가, 네덜란드 플레미쉬 플라워 어레인지먼트 못지않다.
지금은, 나무들은 하늘로 하늘로 가지를 뻗어, 햇살과 바람과 비를 한 톨이라도 더 맞으려 애를 쓴다. 그렇게 여름 내 광합성을 통해 끌어 모은 에너지로, 겨울을 견딘다. 지금은, 식물들에겐 에너지를 축적하는 기간이다. 우리의 여름도, 젊음도 그런 날일지 모른다.
달리는 사이, 왕벚나무에 도착한다. 벚나무 잎은 손바닥만 하게 커졌다. 기특하고, 반갑다. 헉헉 대는 숨을 고르며, 나무줄기에 손을 얹고, 흐르는 에너지를 느낀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 아래,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보인다. 녀석, 실 부스러기처럼 작기도 하네. 그래도, 온몸을 꿈틀거리면서 기어이 실을 타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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