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은행에 볼일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늦은 오후의 은행엔 기다리는 사람이 두 어명 있었고, 점포 안 모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창구 앞엔 책상 위로 1미터가량의 투명 아크릴 벽이 생겼다. 어디서 많이 본 로고네. 부산에 있는 아크릴 회사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공급사는 부산 회사였을까, 수도권 근처의 가공 공장이었을까? 생각이 또 순식간에 날아간다.
아크릴 벽 너머로, 바로 눈앞에서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얼굴 반 이상이 가려진 상태로 주고받는 대화엔 집중이 필요했다. 눈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귀를 쫑긋 세워 음파를 수집하고. 그래도 20% 정도의 대화는 유실된 것처럼 느꼈다.
눈치껏 다음 과정을 유추해 미리 액션을 취한다 해도, 창구에 앉아 계신 계장님이 두 번 말씀하시는 경우가 생겼다. 익숙하신 듯,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아크릴 판 앞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마스크 쓴 채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하루에도 이런 일이 얼마나 되풀이되었을까. 힘에 부치겠다 싶었는데, 계장님은 시종일관 밝고 명랑하시다.
“계장님, 어쩜 그렇게 일을 신나고 재미있게 하시나요?”
“그렇게 보였나요? 감사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힘드신 분들도 많이 계신데, 저는 이렇게 일할 곳이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마스크 구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저는 은행에서 준비해 주니 어려운 줄도 몰랐어요. 얼마나 감사한가요.”
“정말 그렇죠! 저도 건강해서 일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실은 제가 두 달 전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거든요. 뒤에서 쾅 박는 사고였는데,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아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모든 일에 더 감사하게 됐어요.”
일상에서 철학자를 만났다.
사업자 계좌와 개인 계좌를 살리는 간단한 은행 업무라 생각했지만, 두 개의 은행이 합병된 덕에 계좌가 엉켜 있었고, 인터넷 뱅킹도 함께 복원하는 덕에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동안 은퇴가 머지않았다는 계장님은 피씨와 스마트폰, 상품 안내서, 팩스 기기와 아크릴 판 앞을 오가며, 한 음 한 음 정확하게 눌러 치는 스타카토처럼 한 업무 한 업무 해결해 주셨다.
자기 직업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업무에 숙련되어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행하는 사람을 장인이라 할 수 있을까. (주)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은 <상상하지 말라>는 책에서,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해야 살아남는다고 전하며, ‘한마디로 우리 모두 장인이나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 말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기분 탱크에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다. 꼭, 피톤치트 가득한 공기가 세포 끝까지 닿은 것처럼 상쾌하다. 운중천 왕벚나무 아래서 사람이 주는 힐링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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