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동네엔, 청계산에서 시작되는 운중천이 흐른다. 차를 타고 지나다닐 땐 그저 관념 속에 머무르던 ‘운중천’이 달리기를 시작하며 실존하는 대상으로 다가왔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일까, 제법 유속이 빠른 곳이 있다.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에 시선이 멈춘다.
강원도 계곡이 떠오른다. 뜨거운 여름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 도로 길을 지나, 멀미로 머리가 지끈지끈 해 지고 속이 울렁울렁해 도저히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싶을 때, 그때 즈음 겨우 고모댁에 도착했다.
앞이 어지러운 한여름날이라도, 강원도 산속에 흐르는 계곡물은 정신이 번쩍 들만큼 차가웠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은 뜨겁다 못해 데일 것 같았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극악스러운 매미 소리엔 귀를 막았다. 엄마는 아픈 동생을 돌보고, 아빠 손에 붙들려 귀양 온 셈이었다.
신나게 놀 기분이 아니었다. 지루한 시간. 뜨거운 햇빛 아래 동생들을 데리고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가, 슬리퍼로 송사리도 잡았다가, 풀을 뜯어 계곡물에 띄워 보내기도 하고, 돌을 건져 물에 던져도 보고, 동생들과 물싸움을 해봐도 시간은 참 느리게도 흘렀다.
그땐 그랬지. 그래도, 그 덕분에 견디는 걸 배운 게 아닐까. 뜨거운 여름에 하루 종일 버스를 타도 견딜 만큼 튼튼해졌고, 심심해도 몸과 마음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법도 익혔고.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견디는 법을 익힐 수 있었을까. 그럼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유튜브로 홈트 영상을 따라 하다 보면, 생활체육전문가들의 군살 없는 몸에 한 번 놀라고, 마지막까지 해 내는 힘에 놀란다. 도저히 팔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 순간에도, 그녀들은 웃는 얼굴로, 목표한 횟수를 끝까지 해 낸다. 하나 같이 “지금 이럴 때 근육이 자라는 거니까, 한 번 더!” 같은 멘트를 외치면서.
아들이 학교에 다녀와 체력 검사한 이야기를 했다. 6학년 때보다도 체력이 못 하다고. 친구들도 전반적으로 체력이 떨어진 것 같다 전했다. 코로나 19로 외부 활동이 줄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심심함을 견디느라 친해진 것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쇠 귀에 경읽기다.
매일 운중천을 달리다 보니, 혼자 친숙해진 얼굴들이 있다. 매일 우산을 가로로 들고, 등을 꼿꼿하게 펴려 노력하며 빠른 속도로 걸으시는 할머니, 늘 파란 바지에 회색 티셔츠를 입고 달리시는 할아버지. 흰머리가 되도록 꾸준히 몸을 일으켜 세우는 정신력과 단단한 종아리가 존경스럽다.
새 운동복을 입고, 달리며 생각한다. 몸의 세포가 자라는 데에는 물리적인 힘과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왕벚나무도 잎사귀가 무성해졌다. 오늘은 5킬로미터를 달렸다. 앱은, 5 킬리 미터 최고 속도를 갱신했다고 알린다. 더 쉽고, 더 편한 방법은 없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ellnKG29-2GNZp0MoQ8r4Q?sub_confirmatio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