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산

빗소리가 투두 두둑 들렸다, 쏴아 들렸다, 톡톡 들린다. 후두둑이던, 도닥도닥이던 간에 홀딱 젖을 정도의 강수량임은 분명하다. 오늘은 어떻게 할까. 달리지 못해 하루 종일 안개 낀 기분으로 보냈던 지난 금요일이 생각난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지 않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안개인지, 비인지 헛갈리는 어떤 습기 가득한 날, 우산을 쓰고 걷던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비가 오면 달리거나, 그렇지 않거나 양자택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산을 쓰고 운동하는 방법도 있는 거였다. ‘다음에 비가 오면, 나도 그렇게 해 봐야지.’라고 저장해 두었던 기억이 났다.

오늘은 우산을 쓰고 달려보자. 우산을 펼치고 산책로에 접어 선 순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아뿔싸. 주변이 온통 붉게 보이는 것 아닌가. 빨간 우산을 펼친 것이다. 우산살을 감싼 방수천 사이로 햇빛이 투과되어 내 주변에 레드 스팟라이트를 쏜 것 같이 느껴진다. 참고로 나는 적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빛이 투과되는 무엇인가를 사용할 때엔, 바로 그 현장에서, 전원을 켜고 확인해야 한다.

영국의 조명 브랜드 ‘앵글포이즈’에서 조명을 구입한 적이 있다. 빨간 딸기 사탕 같이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A4 크기의 납작한 부조 형태의 조명은 전구를 넣는 부분만 입체로 튀어나왔다. 책꽂이에 수납이 가능할 정도로 작고 귀여운 사이즈. 반가운 마음에 전구를 넣고 스위치를 눌렀는데, 불이 켜짐과 동시에 기대가 꺼졌다.

불을 켜는 순간, 집안 전체가 새빨개진 것이다. 전구의 빛이 투명한 플라스틱을 통과하며, 빛이 닿는 부분을 모두 적색지대로 만들었다. 정육점처럼 홍등이 필요한 장소도 있기야 하겠지만, 보금자리에 흐르는 빨간빛은 불편했다. 그날 이후로 앵글포이즈 조명은 본래의 용도를 상실한 채 장식품이 되었다.

앵글포이즈 조명과 우산은 새빨간 게 닮았다. 레드 스팟라이트를 애써 외면하며 눈을 돌려 나무가 만드는 그늘로 달린다. 초록빛으로 덮으려 노력하며, 눈에 집중되는 감각을 애써 귀로 옮겨 본다. 쏟아지는 비에 운중천 물이 불어, 낙차 하는 소리가 폭포처럼 들린다. 이 정도 비엔, 이 정도 소리가 들리는구나. 새로운 정보가 입력된다.

우산을 쓰고 왼손에 들고 달리다, 금세 오른손으로 들고 달린다. 큰 우산이 주는 바람의 저항 때문에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믿음이 생긴다. 오른손으로 안 되면 왼손으로 하겠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겠지, 연골이 약해지면 연골 옆 근육이 잡겠지 같은.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다. 코로나 19에 지지 않겠다. 나무와 풀이 주는 에너지를 세포 끝까지 불어넣겠다는 듯, 근육과 관절을 잡아당긴다. 달리다 걷다, 달리다 걷다 하며, 오늘도 3킬로미터를 채웠다. 왕벚나무와 인사하고 시작하는 아침. 마음이 한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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