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김

밤새 번개와 천둥이 번갈아치며, 양수가 터진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귀마개로 막은 귀에도 소리가 들리고,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잠결에, 물난리 날까 걱정되면서도, 가끔 한 번씩은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세상을 씻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녹조 냄새가 비릿하게 올라오던 개울에도 불어난 물이 흐른다. 어제와 비교하면 유속이 100배 정도 될까. 바위가 만드는 물길을 보니, 아찔하다. 저 정도 유량 속에 내가 빠지면, 떠내려 갈까 견딜까, 궁금해진다. 괜히 뒤가 서늘하게 느껴져, 고개를 돌려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모든 것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간다.

그날도, 오늘처럼 밤새 비가 내리고 하늘이 흐렸다. 한 달 전 즈음, 35년 동안 천주교 공원에 잠들어 있던 동생의 묘를 정리했다.

2년 남짓 신장암으로 고생했던 동생은 결국 세상을 떠났고, 우리 가족은 그다음 날부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상처를 동여매고 지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다 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덮었고, 우리는 그 슬픔을 표현할 줄 몰라 그냥 참았다.

35년 만에 그 아이 묘비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처음으로 엉엉 울었다. 각자 품고 있던 슬픔이 또렷해서 더욱 슬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햇빛이 방울에 부딪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살아 있는 생명은 언젠가 끝나는 법인데, 꾹 참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생각보다 감정 소모가 더 컸지만, 한편으로 개운함이 온몸을 흘렀다. 그날 이후로, 흑백 브라운 관으로 보이던 세상이 총 천연색 컬러 스크린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내 몸에 흐르던 피의 온도가 31도에서 36.7도가 된 느낌. 이런 것이 ‘씻김굿’ 같은 건가 했다.

지난날들의 힘듦, 슬픔, 외로움, 아픔. 그런 게 없는 삶이 있나. 불교에서는 삶은 고행이라 하지만, 철학박사 김형석 선생은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이다’라 말씀하셨다. 생각해 보면, 또, 그런 순간에도 행복이 산들바람처럼 불어오지 않나. 해도, 바람도, 비도 삶이다.

삼색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갈색 잎이 많아졌다. 목이 말랐나, 벌레가 생겼나 걱정했는데, 밤새 천둥 번개와 함께 온 비바람에 싹 사라졌다. 이 여름이 지나는 것에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이제, 낙엽이 지고, 나뭇가지가 바짝 마를, 생명력이 가신 겨울도 아프지 않다. 다시, 벚꽃이 올 것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