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고 박완서 선생의 산문집을 읽다 보면 푸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올 때도 있고, 양미간의 주름이 깊어질 때도 있고, 코가 시큰거리도록 아플 때도 있다. 쥐락펴락 하는 글의 힘. 산문집 중에서도 <호미>를 자주 꺼내 본다. 고향 개풍을 닮은 구리 아치울에 노란 집을 짓고 이사하신 후 남기신 글이다.


박완서 선생은 1970년, 나이 마흔에, 여성동아 신춘문예에 <나목>이라는 소설로 등단하셨다. 마흔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라는 걸, 삶으로 증명해 주셨다. 살아 계셨더라면 먼발치에서라도 뵙고 싶은데, 이미 2011년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남기신 글로 아쉬움을 달랜다.


‘박완서’라는 검색어로 산문집을 찾아 읽다, 여성동아 문우회에서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라는 추모집을 발간한 걸 알게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가까이에서 함께 하셨던 작가들의 추모글에선 선생이 옆에 계신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추모글 속 선생은 부엽토처럼 보드랍고 향기로우며 진한 분이셨다.


산문집 <호미>엔, 선생께서 잡초를 뽑다, 손톱 아래 흙이 잔뜩 끼고, 그 흙에서 풀이 자라나는 것이 아닌지 상상하는 글이 있다. 추모집을 읽다 보니, 여든 가까운 작가가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유연한 상상력에 대해 부러워하는 작가들이 여럿 계셨다. 그때 알게 되었다. 몸만 뻣뻣해지는 게 아니라, 상상력도 딱딱해진다는 것을.


딱딱해지지 않으려면 새로운 것에 스스로를 계속 노출해라 권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이 중요하다 이야기한다. <시크하다> 조승연 작가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초보심’을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 배워나간다 했다.


매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들어 초록 나무와 풀이 가득한 길을 따라 걸어 보는 것, 달리기를 시작해 보는 것, 산책을 시작하는 것,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것, 모닝 페이지를 쓰기 시작하는 것,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은 굳어버린 마음과 몸의 가동범위를 넓히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바위틈에 자리 잡고 잎을 잔뜩 키웠다. 가로수로 많이 사용하는 나무가 바위틈에 있으니 낯설다. 이런 비주류 아웃사이더 같으니라고. 생각해 보면 또, 플라타너스 나무가 바위틈에 자라지 말란 법도 없다. 다섯 손가락 활짝 편 손바닥 같은 나뭇잎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딱딱해지려는 내 뇌를 휘저었다.


달리는 내 옆으로 참새가 날아간다. 발걸음을 따라 참새 두 마리, 세 마리가 나무로 날아오른다. 식물과 함께 살며, 나비와, 선녀 나방과, 참새와 가까워졌다. 내가 화들짝 놀라며 경계하지 않으니, 그들도 나를 보고 도망가지 않는다. 힘껏 달리고, 멈추고, 또 힘껏 달려 보고, 걷는다. 걸음마를 시작하며 내 몸을 관찰하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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