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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l 19. 2020

작은 노력을 쌓아 가는 것

  잔뜩 흐린 아침. 주황색 해가 떴다. 이런 날은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다. 먼지 때문에 햇빛이 굴절되어 붉게 보이는 것. 아침에 석양을 보는 건 어쩐지 지구 종말을 주제로 하는 영화가 떠오른다. 여하튼 만년필을 열어 손으로 글을 쓰는데, 그 사이 쏟아지는 비. 비 오는 하늘을 한 번 쳐다 보고,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우산을 쓰고 달리면 될 일, 더도 덜도 아니다.  


  오늘 아침엔, 귀에 에어팟을 꽂고, 어제 공개된 혼성그룹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를 튼다. 이효리, 비, 유재석이, 부캐릭터 ‘린다’, ‘비룡’, ‘유두래곤’으로 활동하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각 분야에서 우뚝 선 탑들인데, 세 사람이 모여 신인이나 다름없는 혼성 그룹으로 나온다는 것이 꼭,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을 보는 것 같다.   


  ‘놀면 뭐하니?’’ 51회에서는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장면을 방송했다. 90년대 스타일을 오마주 하는 흰색 슈트를 입고, 안무를 소화하는 세 사람은 빗물이 떨어지는 가운데 댄스 배틀을 벌인다. 몸에서 수증기가 올라올 것처럼 후끈하다. 유재석이 전면에 나설 땐, 톱스타 둘은 기꺼이 뒤에 서 든든한 백이 되어 준다.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을 배려하면서도 치열하게 센터 경쟁을 벌이는 세 사람.  


  흰색 슈트뿐 아니라, 형광 연두색 청소복이나, 파란 야구복까지 입는 옷마다 착착 달라붙는다. 군살 없는 세 사람의 몸에서 자기에게 엄격한 성실함이 읽힌다. 10대, 20대엔 누구나 빛이 난다. 지속 가능하다는 건, 40대, 50대, 그 이후가 되어도 빛나도록 체력과 정신력을 가다듬는 게 아닐까. 그 노력이, 뭐든 계속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토양이 된다.


  5킬로미터를 달리는 속도로 천천히 뛰다, 100미터를 달리듯 전속력으로 달려 본다. 어깨와 연결된 등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90도로 접힌 팔은 앞뒤로 절도 있게 움직이고, 고관절이 당기는 힘이 강해졌다. 보폭도 넓어지고, 발목이 땅에 닿을 때 움직임도 부드러워졌다. 내 몸의 가동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마음에도 자신감이 달라붙는다.  


  일요일 저녁, 간간히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이 보이는 비 오는 산책로. 잠이 덜 깬 눈으로 우산을 쓰고 나온 아저씨, 장미 사진을 찍는 흰색 바람막이를 입은 여성분을 만났다. 우산을 오른쪽 팔로 옮겨 들며, 실컷 내달린다. 운동화는 젖어들고, 양말도 몽땅 젖었다. 깊은 바닷속을 헤엄 치듯 자유롭다. 얼굴엔 내내 미소가 스민다.  


  어느 날 갑자기 달리기 전엔, 이렇게 큰 기쁨을 줄지 몰랐다. 제어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이 있을 땐, 외부 환경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체력과 정신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작은 노력들을 쌓아가는 것. 그건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지 않나.


  인기척이 느껴져 뒤돌아 보니, 여덟 분이 모여 달리고 계셨다. 얼른 길을 비켜 드리니, 가장 흰머리가 많은 분께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지나가신다. 남녀노소 연령도 성별도 다르지만, 민소매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 운동복을 입은 분들. 몸이 장난감 병정처럼 군살 없이 길쭉하다.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뒷모습으로 무림 고수의 한 줄기 바람이 스친다. 몸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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