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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ug 13. 2020

아침의 리추얼

"작가님, 혹시 아침의 리추얼이 있으세요?"

"네! 있어요!"

"어떤 걸 하시나요?"

"저는 일단 일어나자마자 물을 끓이며 커피를 한 잔 내립니다. 의식에 불이 들어오기 전에 무조건 20분 글을 씁니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3년 조금 넘었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쓰시나요?"

"네, 최근 3년 동안 매일매일 썼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신가요?"

"음... 강한 의지로 하는 것 같죠? 그런데, 뭔가 되기 위해 한다기보다, 그냥 궁금했어요. <아티스트 웨이> 책에서, 매일매일 1년쯤 쓰면 책을 한 권 쓰고, 3년쯤 쓰면 시나리오 작가가 되거나 영화감독이 될지도 모른다고 쓰여 있었는데, 정말 그런 지 그게 너무너무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일 년이 지나니까 책이 한 권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냥 계속 써 보게 된 거예요."

"어떻게 쓰시나요?"

"그냥 만년필을 정해서, 손으로 매일매일 씁니다."

"어떤 노트에 쓰시나요?"

"처음엔 굴러다니는 대학노트를 묶어 쓰기도 했는데, 지금은 로이텀 B5 사이즈 라인 노트를 씁니다. 노트를 한 권 다 쓰면 다른 노트를 사며 설레는 재미, 마음에 드는 만년필을 쓰는 재미를 살리면 조금 더 지속할 수 있어요."

"아니, 글씨가 너무 크지 않나요?"

"아! 맞아요! 처음 썼던 노트를 보면 글씨가 크고 엉성해요. 우린 손을 점점 더 쓰지 않잖아요.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다 하고, 글씨 쓸 일이 점점 줄어드니까요. 그런데, 스티븐 킹과 아티스트 웨이에서 손으로 쓰라 하는 걸 보곤 그냥 따라 했어요. 지금은 그때보단 글씨가 좀 더 여문 것 같아요."

"그 과정을 통해 어떤 변화를 얻으셨나요?"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있지만, 저는 노트에 써넣으며 신각 했던 어떤 일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잊히는 걸 경험했어요. 글씨로 쓰는 건 좌뇌가 움직이니까, 감정이 객관화되는 거라 해요. 그러면서 마음이 많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어요."

"저도 해 봐야겠어요!"

"또 다른 리추얼이 있으신가요?"

"네, 그리곤 알파 리포산을 두 알 먹고, 화장실에 다녀옵니다. 그 후엔 요가를 했는데, 올봄부터는 러닝을 시작했어요. 풀과 나무를 보고 달리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러닝 후 요가를 합니다."

"그럼 몇 시에 일어나셔요?"

"정확하게 지키진 못 하지만, 11시에 자고 5시쯤 일어나려고 노력해요. 여섯 시간 정도는 자려고 합니다."

"그런 저녁도 리추얼이 있으신가요?"

"네, 저녁에 자기 전엔 칼슘 마그네슘 아연 혼합제제를 네 알 먹고, 향기 작가 한서형 작가님의 에센셜 오일을 향나무 잔에 두 방울 떨어뜨린 다음, 귀마개를 하고, 책을 읽으며 안마기를 돌려요. 그럼 금세 잠이 듭니다."

"감사 일기도 쓰시나요?"

"그건 써 보다, 말았는데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그때의 심장과 뇌의 주파수가 일치해 가장 큰 생산성이 나타난다고 하니, 몸과 마음과 생각은 모두 다 연결이 되어 있는 거예요. 정말 신기하죠!"


  만 3년이 넘은 나의 리추얼들에 대한 최근 인터뷰 내용이다. 매일매일 반복하며 무의식에 새겨 넣은 나만의 의식은 이제 완전히 습관이 되어, 일부러 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지고, 저절로 글이 써지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었다. 어제까진.


  오늘은 새벽에 일찍 나와야 했다. 나의 리추얼을 위해 조금 더 빨리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잠이 들었다. 흰색 플라스틱 탁상시계 까만 분침을 돌려 맞추고, 버튼을 세웠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5시 45분이었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실수에 적지 않이 당황했다.


  일어나자마자 양치만 하고 뛰쳐나가며, 나는, 정신이 어벙벙하다. 팔, 다리, 머리, 몸통이 각자 따로 돌아다니는 느낌. 글을 쓰고, 달리며, 요가하는 나의 리추얼은 헐거워진 신발끈을 묶는 것처럼 내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었다. 하루 일과의 빈틈 새에 모닝 페이지를 써넣고, 달리기를 채워 넣으며, 숨이 차다. 아침에 하는 것만 못 하다고 느낀다. 실수는, 소중함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앞으론, 중요한 일이 있을 땐 알람은 두 개, 세 개, 네 개씩 맞추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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