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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ug 18. 2020

지치지 말 것, 포기하지 말 것

  아침에 알람 소리가 계속 울렸다. 나의 흰색 플라스틱 알람시계는 이미 버튼이 눌려 있다. 소리의 근원은 창밖. 여름이라 창문을 열고 생활한다. 옆집에서도 창문을 열어 두셨나. 옆집의 알람 소리인가 싶다. 일찍 일어난다는 공통점에 반가우면서도, 아직 벨 소리를 못 들으시는 것 같아 약속에 늦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다.

  운동복을 입고 집을 나서며 시계를 보니 정확하게 여섯 시다. 해가 아직 본성을 드러내기 전, 덥지도 춥지도 않은 24도에 나무 향 가득 품은 공기. 민소매를 입은 팔과 쇼츠를 입은 다리로 느껴지는 온도가 스트레치 소재 슈트처럼 어깨에, 허리에, 다리에 감긴다. 아, 기분 좋다. 내겐 새벽 6시가 딱 좋구나. 컨디션도 기분도 나아진다.

  알람 소리는 밖에서도 울린다. 아니, 땅에 가까울수록 크게 들린다. 그제서 새벽에 나를 깨운 소리가 알람 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귀뚜라미가 범인이었다. 8월 18일 즈음 들리는 소리를 기억해 둔다. 벌써 가을이 코앞이구나. 섭섭하다.

  지금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뜨거운 해지만, 곧 그리워질 거라는 걸 안다. 짧아지는 해는 기온을 떨어뜨릴 테고, 자연에겐 순응하는 수밖에 없다.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들은 잎으로 가는 에너지를 차단하고 덕분에 우린 눈이 부신 빨강 노랑 황갈색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곤, 잎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가지를 봐야 하겠지. 그렇게 추워지면 또 지금이 못 견디게 그리울 것이다.

  긴 장마 후 습도가 높았다. 고온다습은 벌레가 살기 좋은 조건이다. 덕분에 달리는 길에 벌레가 많이 늘었다. 꼬리에 뾰족한 침을 매단 벌처럼 생긴 벌레는 나를 따라 날아오른다. 녀석은 정면으로 내게 돌진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지렁이도 간간히 눈에 띄고, 투명한 실로 육각형 레이스를 뜨는 호랑거미는 점점 체구가 커지고 있다.

  얼마 전 꽃을 피워 신기했던 나무에 갈색 생물체가 다닥다닥 덮었다. 틀림없는 매미 나방이다. '아우야~ 나무에 그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나무가 다 말라죽어!' 소리가 목청 끝까지 올라온다. 어떻게 하지. 발을 동동 구르다, 구청 공원 관리과에 방제를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맞은편 가로등의 관리번호를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어떻게 저 벌레들을 쫓을 수 없을까. 손에 잡히는 돌을 들어, 가지를 있는 힘껏 맞춘다.

  한번은 돌이 헛 맞았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돌을 들어 다시 한 번 가지를 겨냥한다. 이 녀석들, 후다닥 날아가겠지. 두 번째엔 탁 소리가 나며 돌이 나무 기둥에 제대로 맞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날아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매미 나방이 빈틈없이 매달려 벌레에게 시달리는 나무라고 하기엔, 잎이 무성하고, 초록색이다. 벌레는 아닌가 보다. 

  이 나무의 이름은 신나무였고, 매미나방이라 생각한 건 신나무 열매였다. 가까이 가서 관찰해도, 모양새가 완전히 매미나방과 똑같다. 약재로 쓰이는 붉나무도 꽃을 피웠고, 줄기에 가시를 숨긴 아까시나무도 만났다. 딸기가 나무에 열린 것 같은 산딸나무 열매는 또 얼마나 귀여운지.

  때가 되어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며 순서를 정해 놓은 것처럼 서로 돌아가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나도, 우리도, 각자 꽃 피우는 시기도, 열매 맺는 시기도 모두 다를 거라는 걸 안다. 지치지 말 것. 포기하지 말 것. 오늘도 힘 있게 무릎을 세워 한 발자국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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