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선물, 참나리 꽃다발

올해 초, 필기시험 하나를 보았다.


“언니, 시험 준비 잘 돼 가?”

“응, 60점 맞으면 되니까 딱 그만큼만 하려고. 60점 나와.”

“헐. 우리 언니가 60점이라고?”

“응. 60점 맞으면 되는 시험인데?”

“그래도! 맨날 100점 맞는 우리 언니가 60점이라니!”

“그럼 안 되나?”

“그럼 안 되지! 적어도 우리 언니라면 80점은 맞아야지!”


이 얘기가 귓가에 뱅뱅 맴돌아, 책을 한 번 더 보고 기출문제 모의고사를 끝끝내 다 풀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건, 맏이의 조건반사 같은 거다. 기어이 83.3점을 맞았다. 그런 동생이, 내일은 6킬로미터에 도전한다며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남겼다. 그럼 나도!


오늘은 왕복 6킬로 미터라고, 뇌가 몸에 신호를 보낸다. 0.7킬로 지점의 능수버들에게 점프해 하이파이브 한 번 하고, 1.5킬로 지점의 왕벚나무의 줄기를 어루만진 다음, 2킬로 지점의 솔잎을 손바닥에 넣고 쥐었다 폈다 해 본다. 나만의 달리기 3코스.


2.8킬로 지점에서 이제 포기하고 싶다. 그만 갈까, 더 갈까. 망설이는데, 6킬로, 6킬로, 6킬로가 보글보글 풍선처럼 떠 오른다. 겨우 200미터인데, 에잇! 그냥 더 달리자! 멈추려다 다시 속도를 높인다.


팔뚝의 스마트폰을 흘끔흘끔 훔쳐보며 겨우겨우 3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한다. 휴. 하며 몸을 돌리는데, 오른쪽 어깨너머로 선홍색이 보인다. 저게 뭐지? 하는 순간 꽃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오른다.


군락을 이룬 참나리가 동쪽을 바라보고 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고 있다. 짙은 초록을 배경으로 활짝 핀 주황색 꽃잎에 눈이 부시다. 겨우 200미터 더 왔을 뿐인데, 살아있는 참나리 꽃다발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마다가스카르 산 바닐라 빈을 한 개 모두 긁어 넣은 크렘 뷔 륄레처럼 만족스럽다.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딱 그 정도라도 충분히 좋다. 목표는 저 높은 곳의 1등도 아니고, 국가대표 선수도 아니다. 바로 어제의 나! 그 정도를 목표로 하면 만만하고 즐겁지 않다. 큰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큰 성공에도 들뜨지 않고, 한결같은 속도로 정주행 하고 싶다.


앞에선 할머니께서 샛노란 운동화를 신고 빠르게 걸으신다. 달리기를 시작한 언니 동생 친구들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흰머리를 휘날리며 함께 달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벌써부터 신이 난다. 2020년은,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몸과 마음의 생각의 건강으로 중심을 돌리는 터닝포인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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