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

아침에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진다. 우산을 들고나갈까 말까. 자동우산의 버튼을 누른다. 문밖에서 우산이 펴지는데, 다시 접어 문 안쪽에 기대 놓는다.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자. 비 속을 달리는 건 정말 재미있다. 여름이 한창인, 지금 이 계절에 할 수 있는 사치가 아닐까.

집 앞 코너를 돌자마자 크린넷이 보인다. 우리 동네는 골목마다 투입구가 있는 로봇 같은 기계가 서 있는데, 보통 크린넷으로 칭한다. 음식물 쓰레기나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처리장으로 이동하는 길이다. 동사무소에서 키를 발급받아 투입구에 대면,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봉투를 넣으면 땅 아래로 이동한다.

그런데, 동네 크린넷 앞에 음식물 쓰레기며,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쌓이고 있었다. 러닝을 시작하고 마치는 지점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쓰레기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너그럽게 이해하려 해도 사용하고 남은 찌꺼기들이 아름답게 느껴지진 않는다. 모두 숙지하고 있는 내용인데, 혹시 새로 이사 오신 이웃이 계신가 싶다.

하필이면 그쪽 길은 버스정류장이 가까워 동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이다. 아침에, 혹은 저녁에 쓰레기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으며 출퇴근하는 건, 유쾌하기보단 불쾌에 더 가깝다.

나라도 치워야겠다 싶어,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와 크린넷 키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먹통이 아닌가. 다시 봤더니 전원이 꺼져있다. 고장 난 것이다. 이제야, 쓰레기봉투를 들고 출근하다, 문이 안 열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고장신고를 했더니, 천둥 번개 치던 날 고장 난 크린넷이 많아 순서가 한참 뒤라고 하신다.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는 사정을 말씀드리니, 그래도 별 수 없다며 기다리라는 답변이다. 어떻게든 고쳐 주시면 쓰레기봉투는 제가 정리하겠다고 호소해 본다. 혹시 예상보다 빨리 처리되면, 얼른 정리할 수 있게 연락을 부탁드리며 전화번호를 남겼다.

사정이 통한 것일까. 한참 걸린다더니 고장 난 크린넷을 오늘 고친 후, 전화도 주셨다. 그 앞에 쌓여 있던 쓰레기봉투도 싹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꼭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더라도, 내가 그 사람이라 생각하면 조금의 수고쯤은 할 수 있다. 오늘 조금, 사람 사는 세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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