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세찬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렸다. 숨이 살아 있는 능수버들 잎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다. 초록잎 사이로 간간히 노란 잎이 눈에 띈다. 벌써 가을이 오는 건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럼 달리기는? 가을엔 그렇다 치고, 겨울엔 어떻게 해야 할까.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는 게 느껴진다.
물 흐르는 소리를 옆에 두고 궛바퀴에 부딪히는 바람을 맞으며 초록 나무 사이를 달리는 게, 일상의 큰 기쁨이 되었다. 달리지 못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래도 겨울엔 힘들겠지? 옷을 많이 껴입으면 되지 않을까?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생각이 전력 질주한다. 아니야... 미리 걱정하지 말자. 그땐 그때의 내가 알아서 잘하겠지.
봄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봄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식물도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봄에 심는다. 따뜻해지면 분자의 운동이 활발해지니, 수분도 양분도 움직임이 빨라진다. 식물은 바람에 뽑히지 않으려 악착같이 뿌리를 키우고, 줄기를 뻗어나간다. 해와 비와 바람을 충분히 먹고 마시며 튼튼하게 몸집을 키운다.
내 몸에도 비와 바람과 해를 많이 담았다. 손등과 팔은 까맣게 탔고, 얼굴에 있던 까만 점은 더 까매졌다. 하지만, 비가 오면 피할 게 아니라, 맞을 줄 알게 되었고, 해가 뜨겁게 내리쬐면 나무 아래로 그늘을 따라 달리며 피할 줄 알게 되었다. 자연을 알아갈수록, 내 몸을 알아갈수록 두려움이 사라졌다.
무릎이 당기는 듯하면 잠시 멈춰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발목이 당기는 기분이 들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발목을 돌려 풀어준다. 애플 워치에 Bpm 200이라 표시될 땐 머릿속의 생각들이 레벨 8의 테트리스 블록처럼 빠르게 쏟아진다. 그럼 멈춰서 스마트폰을 꺼내 에버노트에 적는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햇볕이 뜨거우나, 한결같이 깡충깡충 달리는 나를 본다. 등줄기는 점점 꼿꼿해지고, 종아리는 튼튼해진다. 내 몸에 붙는 근육만큼 나에 대한 믿음도 단단해진다. 매일매일 꾸준히 해 나가는 나를 믿는 것. 그게 바로 자신감이 아닌가.
2년 전, 마당에 살구나무를 심었다. 분명히 마당과 수직에 가깝게, 똑바로 심었다. 하지만, 두 번의 여름이 지나는 동안, 살구나무는 해를 따라, 바람을 따라 몸을 조금씩 기울여 방향이 틀어졌다. 제 멋대로 뻗어나간 가지는 조금이라도 해와 비와 바람을 더 맞으려는 애틋한 노력이다.
우리도 살구나무처럼 조금씩 조금씩 가지를 뻗어간다. 1990년대 댄스곡을 들으며 달린다. 지금 들어도 어깨가 들썩들썩하고 신이 나는 걸 보면, 좋은 콘텐츠야 말로 타임리스 아이템이 아닌가. 이 글을 보고 함께 달리기 시작한 친구들이 고맙다. 뿌리가 깊게 내린 식물들이 가득한 숲이야말로 건강한 생태계가 되니까.
https://linktr.ee/jaekyung.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