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마음

주말,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 차 안이었다.
“나 오늘 아침에 여기까지 왔다 갔는데.”
“진짜?”
“응. 여기 맞아. 저기 저 빨간 집. 맞아. 805동, 807동. 여기 맞아.”
“헐! 이렇게 멀리? 대단하다!”
남편과 아들이 동시에 외친다.

두 사람 눈에 스치는 놀라움과 존경이 섞인 섬광을 보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놀라울 일은 아닌데. 나는 그저 달리기를 좋아할 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자꾸 하고 싶으니까 저절로 하게 된다. 남들이 좋다 하는 건, 금세 싫증이 나니 오래 하긴 힘들다. 그래서 맹목적 유행은 메뚜기처럼 한 철인 게 아닐까.

2킬로미터로 시작한 달리기가 6킬로미터를 넘나들고 있다. 마음으로는 10킬로미터도 한달음에 내지를 것 같지만, 내 몸은 시동 켜면 튀어나가는 스포츠카가 아니다. 스트레칭하고, 관절을 돌려 풀고, 서서히 달리며 심박을 올리고, 몸이 조금 부드러워졌을 때 겨우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다소 노후한 생명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리고 있다.

2킬로미터 달리던 실력이 6킬로미터를 견디는 체력이 되며, 길에서 보이는 이웃들의 얼굴로 관심사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짧은 단발머리 키 작은 여성은 매일 만날 수 있었는데, 며칠째 눈에 띄질 않는다. 무슨 일이 있나... 여름휴가라도 가셨나 소식이 궁금하다.

O자 형 다리를 가진 할아버지도 매일 뵙는 얼굴이다. 등이 땀에 홀딱 젖은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더 내딛게 된다. 곱슬곱슬한 흰머리 할머니는 매일 까만 우산을 들고 나온다. 우산을 가로로 들고 걷다, 한 손으로 들고 걷다, 우산을 펴고 우산대 아래로 몸을 숨기기도 하신다.

주황색이 선명한 참나리 꽃 군락을 만난 날, 여름 햇빛을 고스란히 담은 뜨거운 빛깔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길가 건너에 있는 참나리는 발길이 닿기 멀어 그렇다 해도, 산책로 곁에 있는 꽃도 며칠이 지 나도 그대로 있었다. 꽃이 나에게만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이웃들께도 그러지 않았을까. 오가는 수많은 이웃들이 꺾어 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함께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냥 둔 것임에 틀림없다고 제멋대로 상상한다. 잘라가지 않은 마음에 감사했다.

그래서 나 혼자 반가운, 낯익은 이웃들께는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걷던 우산 할머니께서 눈을 크게 쓰시고,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 “안녕하세요~” 하시며 화답하신다. 내 얼굴에도 미소를 담당하는 근육이 움직인다. 내가 먼저 인사하니, 이웃들이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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