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곁에 두고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 만들 '물'을 끓이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는 것은 스물다섯 살 때부터 시작된, 일종의 의식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증기를 품은 커피 향이 코 뒤로 넘어가 우뇌를 깨우며, 감성 세포가 분자 운동을 시작한다.


굳이 커피를 '만든다'라 표현하는 이유는 다양한 시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먼저 에스프레소 머신. 주방 개수대 옆에 위치한 이 기계는 커피를 한 잔 뽑을 때마다 커피콩을 갈아 쓰기 때문에, 조용한 새벽, 드르르르륵~ 위잉하는 기계음이 공기를 깬다. 가족들의 단잠을 깨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커지며,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감성이 쪼그라든다. 최고의 아웃풋을 위해 제법 큰 비용을 투자했지만, 효용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네스프레소의 버츄오 머신으로 바꿔보았다. 늘 한결같은 추출물에, 조용하고 빠른 결과물을 내놓았지만, 한 브랜드의 정해진 원두를 구입해야 하는 것이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다시 보덤의 프렌치 프레스를 꺼냈다. 지난 2월 파리 여행에서 데려온 커피를 꺼낸다. 노란색 에펠탑이 그려진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 봉마르쉐 출신이다. 홀로 떠난 여행에서 만끽했던 자유가 물씬 배어있다. 분쇄커피를 두 스푼 넣고, 프레스 끝까지 물을 붓는다. 하지만, 뚜껑이 덮여 있어 커피 향을 맡을 수 없어 아쉽다. 게다가 커피 찌꺼기는 하수구로 흘려보내면 배수관이 막히니, 불편함에 감성도 막힌다.


그래서 냉동건조 커피를 샀다. 일리, 스타벅스, 자뎅, 카누, 루카, 네스카페, 네스카페 수프리모 등등 출시된 거의 모든 제품의 알 커피를 마셔 보았다. 그래도 내 감성은 차가운 물에 탄 미숫가루처럼 녹지 않는다. 이젠, 서로 다른 종류의 알 커피 두세 가지를 섞어 나만의 조합을 만들어 본다. 콜롬비아와 이탈리안을 섞어 보고, 수프리모와 자뎅과 디카페인을 섞어 본다. 그렇게 효과적인지 모르겠다.


다시 네스프레소로 돌아온다.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가장 작은 모델을 준비했다. 커피가 추출되는 동안 방안 엔 향이 가득 풍긴다. 풍부한 크레마도 시각적으로 만족스럽다. 500밀리미터 아메리카노를 곁에 두고 모닝 페이지를 쓴다. 페이지 중간쯤 쓰면 딱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된다.


건조한 글을 촉촉하게 깨우려는 애틋한 노력이여.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금세 식어버린 커피에선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감성은 커피로 100% 채워지는 게 아니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며 몸을 움직인다. 그래, 심장이 빨리 뛰면 조금 낫더라. 이렇게 해도 네가 안 움직이고 배길 거야.라고 감성에게 잽을 날려 보지만, 도대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벼리긴 힘들어도 어찌나 순식간에 무뎌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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