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매일매일 비가 온다.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채편으로 두들기는 장구 소리처럼 가볍게 들 때도 있고, 정신없이 두들기는 드럼 소리가 될 때도 있다. 몇 번 들릴 때는 리듬감 있고 좋았지만, 이젠 지루하다 못해 무서워진다. 코로나와 홍수 피해로 얼룩진 2020년의 여름. 비 피해 소식을 보면 안타깝고, 무기력하다.


울적하지만, 살아 있는 한 매일 아침이 오고, 해가 뜨는 것. 어쩌겠는가. 에너지 충전하러 왕벚나무를 만나고 와야겠다. 바닥에 고인 물 웅덩이엔 빗방울이 그리는 동심원이 보이지 않는다. 또, 운동복을 갈아입는다.


신이 나지 않을 땐, 도구를 바꿔 본다. 글 쓰기가 시들해질 땐, 입문자용 만년필 페르케오를 숙련자용 만년필 스튜디오로 바꿔보고, 로이텀 노트를 노란색에서 파우더 핑크 색으로 바꾸던 지, 글이 더 빨리 써지도록 키감이 좋은 매직 키보드를 쓰던 지. 그래서 새 러닝복을 구입했다. 베이지 색 모자에 까만 로고가 그려진 나이키 모자와 속바지가 붙어 있는 검은색 러닝 쇼츠!


새 모자를 쓰고 비를 맞는 건 어쩐지 아깝게 느껴져 망설여진다. 새 지우개를 아끼던 열두 살 때가 생각난다. 어쩌다 은색 잠자리가 그려진 새 톰보우 지우개를 갖게 되면 꽃 한 송이 든 것처럼 냄새를 킁킁 맡아가며 손 위에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연필심이 묻어 하얀 몸이 더러워질까 싶어, 종이로 옷을 입히고, 모서리만 살살 문대며 아꼈다. 물질이 흔해진 요즘엔 느끼기 힘든 애틋한 감정.


요즘엔 아끼다 보면 시기를 놓친다. 몇 해 전, 흰색 바탕에 오렌지 꽃 두 송이가 그려진 티셔츠를 구입했다. 하지만, 아끼다 결국 때를 놓쳐 결국 몇 번 입지도 못 하고 재활용함으로 보냈다. 구입할 땐 신중하게 구입하고, 샀으면, 그 소용이 다 할 때까지, 닳아 구멍이 날 때까지 쓴다. 결국 새 바지와 새 모자를 쓰고 달려 나가는 아침은 어쩐지 몸이 날렵하다.


운중천 천변 산책길이 막혀 있던 출입 금지 테이프가 모두 풀려있다. 우리의 아침 운동을 위해 누군가의 손길이 지나갔다. 밤 새 폭우가 내리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비 오는 새벽, 노란색 비옷을 입고, 테이프를 푸는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 수고를 담당한 분들께 감사하다. 새벽에 폭우를 맞으며 다른 사람의 안전을 지킨다는 것은 사명감이 없다면 힘들 것이다.


어제 그제, 불어난 물 때문에 출입 금지 테이프가 길을 막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천 옆 길이 아니라 높은 지대를 달렸는데, 물소리가 들리 질 않으니 그토록 재밌는 러닝이 소금을 치지 않은 감자볶음처럼 단조로웠다. 오늘 달리는 천변 옆 길이 좋다.


오른쪽에는 풀들이 빼곡하게 자라 숲을 이루고 있고, 왼쪽엔 이팝나무, 조팝나무 와가 빈틈없이 자랐고, 그 사이사이로 왕벚나무가 산책로 위로 가지를 뻗었다. 소나무 사이사이로 은행나무도 잎을 풍성하게 키우고 있다. 초록 터널을 지나는 기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동안에도 고맙다. 고마운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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