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앞다리 아래에선 세 갈래의 천이 하나로 만난다. 며칠째 계속 쏟아지는 비로 흙빛 저수지가 되었다. 평소엔 고양이 같이 소리 소문 없이 흐르더니, 오늘은 승천하기 전의 용처럼 온몸을 뒤튼다. 흙탕물이 휩쓸려 내려가는 물가에 30도로 기운 버드나무는 아슬아슬해 보였지만, 내 걱정일 뿐, 굳건하다.
바닥을 덮고 있는 덩굴이 눈에 들어온다. 손바닥을 활짝 편 크기의 잎을 가진 덩굴식물이 바닥을 덮고, 억새를 감아 타고, 기어이 물푸레나무 꼭대기까지 기어올랐다. 잎이 뒤덮은 바닥엔 햇빛 한 톨 들어가기 힘들어 보인다. 다른 식물을 못살게 굴고, 자기만 살겠다는. 저렇게 인정사정없이 타고 오르는 건 틀림없이 칡과 가시박이다.
저렇게 이기적인 생명체라니. 등에 맨 칼집에서 장도를 잡아 빼, 몸을 360도 회전하며 날아 검을 날려 칡덩굴을 동강내는 칼잡이가 되고 싶다. 덩굴을 잡아 뜯고 싶은 마음을 겨우 달랜다.
<식물의 인문학>에서는 칡을 무법자라 표현했다. 저 상태로 2~3년 정도 지나면, 해와 비와 바람을 맞지 못 한 나무들은 힘이 약해져 고사하게 된다. 풀과 나무들은 칡의 성장을 방해하는 타감 물질을 발산하고, 한꺼번에 죽어 버린다. 그러면 칡과 가시박은 다음 해엔 싹 틔우지 못하고, 기회를 살핀다.
식물들은 조화롭게 잘 사는 것 같지만, 냉정하다. 집에서 화분에 담아 키우던 아로우카리아가 있다. 아로우카리아는 위로 자라며 헬리콥터 날개 같이, 혹은 포비의 묶은 머리같이 새 잎을 퐁퐁 뻗는다. 모양이 아름답고, 공기도 잘 정화해서 인기가 많다.
한 화분 안에 아로우카리아 5개의 줄기가 자라고 있었다. 튼튼한 순서대로 1번, 2번, 3번, 4번, 5번이라고 하자. 3년쯤 지나니 화분이 작았는지, 1번 2번이 덜 자란 약한 줄기 3번 4번 5번을 옆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3번 4번 5번은 직각으로 서 있는 게 아니라, 점점 수평에 가깝게 누웠다.
보다 못 한 내가 1번 2번을 한 화분에 두고, 3번 4번 5번을 각각 화분에 나눠주었지만, 5번은 기운을 회복하지 못하고 기어이 세상을 떠났다. 그냥 두고 지켜보았다면 3번 4번 5번 모두 퇴출당했을 거다.
그나저나 저 칡과 가시박은 어떻게 제거하는 게 좋을까. 물가의 잡초는 포클레인으로 정리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난감해 보인다. 정리하면 이로운 나무와 풀도 모두 뽑히게 되니까. 잡초는 뿌리 째 뽑기보다 밑동을 자르는 편이 좋다. 뿌리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살리기 위해서. 미생물의 종류가 많을수록 좋은 토양이 된다. 칡을 미운 사람인 셈 치고, 잡아 뜯는 운동이라도 시작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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