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

파란 하늘이 싱긋 웃는다. 반갑다. 빗속을 가르며 달리는 것도 좋지만, 맑은 햇살에 몸을 굽는 느낌도 좋다. 얼른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스트레칭한다. 읽을 책들이 쌓여 있는 책상 위로 책 봉투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광택이 약간 있는 우윳빛 봉투에 흑백 칠판을 닮은 초록색으로 ‘이 달엔 무슨 책이 올까 기다려지는 최인아 책방 북클럽’이라고 쓰여 있다. 다른 하나는 회색 비닐봉지에 (주)유피에이라고 쓰여있다. 정기 구독한 책 두 권이다. 오랜만에 만화 월간지 보물섬을 기다리던 설렘이 느껴진다. 콘텐츠가 넘쳐 나는 시대. 가슴 두근거리는 이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얼른 보고 싶지만, 먼저 운동을 하기로 한다. 오늘은 실컷 달려야지. 6킬로미터를 마음먹고 달린다.

시간이 없을 땐 2~3킬로라도 달린다. 하지만 할 일이 있고 마음이 바쁠 땐 그마저도 벅차다. 기관지도 긴장하는지, 호흡도 잘 조절되지 않는다. 무릎도, 허리도 자세가 틀어지며 몸도 뻣뻣하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달리는 편이 낫다. 포기하지 않았던 덕에 오늘 달리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달리기 코스에 들어 있는 길은 천변이라, 폭우가 내려 물이 불어난 지난 2~3일 동안은 바로 옆을 달리긴 위험했다. 풀들이 모두 누워있다. 위에서 떠내려온 토사와 돌멩이들을 보며, 물살의 세기를 추측해 본다. 물길이 지나가지 않은 곳에 있는 풀들은 바람결에 따라 파도를 그린다. 인간의 눈은 본능적으로 유선형을 좋아하기 때문에, 누구든 나무와 풀을 사랑하게 된다.

나무들이 한껏 물을 마시고 바람을 맞아 폭풍 성장기를 지나고 있다. 판교도서관 사거리 건물들 뒤쪽으로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물푸레나무, 플라타너스 나무가 길 따라 심어진 작은 공원이 있다. 건물을 배경으로 풍성하게 자란 나무가 서 있는 풍경이 암스테르담 외곽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달리니, 갈대숲이 있다. 가을이 되면 늘 순천만의 갈대가 그리웠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니. 멀리 있는 것만 좋아 보이고,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함을 찾으려는 노력이 게을렀다.

주말이라 그럴까. 아침 7시 15분을 지나고 있는데, 오늘따라 아이와 함께 나온 엄마 아빠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한 아빠는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들과 함께 잠자리 채를 들고 운중천 안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고, 어떤 엄마는 유치원 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어떤 엄마는 흙을 관찰하는 딸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운중천 한가운데엔 고무보트를 잡고 서 있는 아빠도 있다. 구명조끼 입은 아들 둘은 노란 보트에 앉아 플라스틱 노를 젓고 있다. 그래, 물놀이하러 꼭 먼 곳을 가야 하나. 동네 어르신들도 재미있어하며 뒤돌아 보신다.

우린,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는 중이다. 자연의 감촉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사물들을 보는 눈과 듣는 귀와 느끼는 촉감과 후각 세포의 감각을 섬세하게 다듬어 준다. 물과 거미와 새와 물고기와 지렁이와 함께 사는 걸 아는 아이들은, 세상을 넉넉하고 담대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나도 꽤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달린다.

분무하듯 내리는 비가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 시간 채 되지 않는 러닝 동안, 새파란 하늘부터 시원한 비까지,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지금 이 순간. 이마에서, 콧등에서, 등에서 흐르는 땀방울에 나쁜 것들이 녹아내린다. 개운하다.


https://linktr.ee/jaekyung.jeong

https://www.youtube.com/c/%EC%9E%91%EA%B0%80%EC%A0%95%EC%9E%AC%EA%B2%BD%EC%9D%98%EC%B4%88%EB%A1%9D%EC%83%9D%ED%99%9C?sub_confirmatio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