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영복은 목 뒤로 끈을 묶는 노란색 원피스 수영복이었다. 넓은 분홍 띠와 연두 띠가 어깨부터 허리까지 사선으로 지나고, 수영복 가장자리 연두색 바이어스가 길게 끝으로 연결되고, 그 끈을 리본으로 묶어 목 뒤에서 고정하는 형태의 수영복이었다.
동생의 수영복은 똑같은 디자인으로 색상만 달랐다. 흰색 바탕에 녹색 띠와 노란 띠가 사선으로 지나고 있었다. 난, 흰색보단 노란 수영복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 수영복을 입고, 고만고만한 네 자매와 엄마 아빠가 개발이 시작된 서울 어디쯤 수영장 나무 그늘 아래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해수욕장으로 떠났던 여름휴가에서 그 두 수영복은 셋째 넷째 몫이 되었다. 새로 장만한 수영복은 자주색에 가까운 핑크 색에 가슴팍부터 배까지 사선으로 짧은 레이스가 있고, 등 쪽에 있는 금색 훅을 핑크색 고리에 끼워 넣어 여몄다. 그 수영복은 색상도, 고정 장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을 때마다 툴툴거렸음에 틀림없다.
그뿐 아니다. 엄마가 준비한 수영 모자는 모자 바깥에 온통 꽃이 붙어 있었고, 귀 양쪽으로 길게 연결된 끈을 턱 아래 리본으로 묶어 고정했다. 꽃분홍 원피스 수영복과 꽃이 잔뜩 달린 문어 머리 같은 모자. 그 모자는 정말 쓰기 싫었다. 나는 기어이 끝끝내 그 모자는 쓰지 않았다.
수영복이 어떻든, 물놀이는 똑같았다. 물 위에 누워, 머리를 물아래로 푹 담그고, 숨을 들이마셔 가슴팍에 공기를 잔뜩 밀어 넣으면, 몸이 떴다. 몸에 붙어 있던 공기는 바닷물의 저항을 가르고 끝끝내 표면으로 떠오른다. 물속에서 잠긴 귀로 듣는 공기방울의 소리는 두루륵 뚝뚝 몽환적이었다. 일상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소리. 소금기 잔뜩 머금어 끈적끈적한 바닷물 속에서 놀았던 건, 그 날이 마지막이다.
파라솔 아래, 코코넛 나무가 그려진 갈색 병 태닝 오일을 다리에 바르고 눕는다. 코코넛 진한 향에서 여름 냄새가 난다. 엄마 아빠 곁에서 하루 종일 놀던 그때로 돌아간다. 짠내 가득한 모래, 밀려 들어오는 파도소리, 새파란 하늘과 맑은 유리빛 바다. 뜨거운 햇볕을 쬐고 있으니 저절로 잠이 온다. 엎드려 누워, 눈을 감는다.
엄마, 아빠와 조카들과 함께 찾은 바닷가. 꽃분홍색 수영복을 입었던 그때 내 나이의 조카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이들이 바나나 보트를 타러 가자고 조른다. 한 번도 타고 싶지 않았던 놀이기구지만, 그래!라고 대답한다. 큰 조카가 앞에 앉고, 나는 뒤에 앉는다. 바나나 보트가 타고 싶기보다, 너랑 오래오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재가 필요한 거야.
제부, 큰 조카, 나, 올케, 막내 동생이 다섯 명이 나란히 앉은 바나나 보트. 앞뒤로 앉아 소리소리 지르며 제주 바다를 내지르는 동안,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제트스키가 보트를 이끌고, 빠른 속도로 달리자 물 표면에 보트가 튕기며 몸이 함께 좌우 앞뒤 위아래로 흔들린다. 기꺼이 바닷물에 내동댕이쳐지면서도 눈물이 날 만큼 재미있다. 같은 행위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화학반응이 다른 게 아닐까. 조카들 부추김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길 잘했다.
조카 다섯과 아들까지 여섯 명의 아이들은 바다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궁금해진 내가 따라 들어간다. 모래에 앉은 막내 조카가 묻는다.
“이모, 머드팩 해 보셨어요?”
“응? 아니?”
김녕 해변 고운 모래를 손등에 얹으며 조카가 말한다.
“이렇게 하면 꼭 진흙 장갑을 낀 것처럼 변해요.”
“어, 그러네.”
“그런데 파도가 오면 다 없어져요.”
“어, 진짜 그러네! 신기하다.”
우린 손등에 모래를 얹으며 파도를 즐긴다. 이 아이의 수영복엔 꽃무늬와 리본은 없다. 우리에겐 이 날들이 어떤 추억으로 남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그리울 것이다. 코로나 19 이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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