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의 대화를 엮은 <다시, 그림이다>를 네 번째 읽고 있다. 처음 읽을 땐, 솔직히 책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의 역사>도 두 번 읽었고, 자주 등장하는 반 고흐에 대한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도 여러 번 읽었고, 반 고흐 미술관도 다녀온 덕분인지 이번엔 이해되는 대화들이 더 많았다.
<다시, 그림이다> 속엔 피카소에 대한 일화가 등장한다. 피카소가 사진가 뤼시앵 클레그의 목숨을 구한 것. 뤼시앵은 컨디션에 아무 이상을 못 느끼고, 그저 체중이 조금 감소했는데, 피카소가 그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말한 것이다.
뤼시앵은 말도 안 된다 생각했지만, 피카소의 아내 재클린이 제발 가보라 거드는 바람에 병원에 갔고, 의사는 바로 수술을 집행했다. 뤼시앵은 통증이 없는데 사망에 이르는 매우 드문 복막염을 앓고 있었다고. 피카소는 뤼시앵의 얼굴만 보고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저 얼굴만 보고도 이상을 짚어 낸 피카소의 관찰력이 대단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이 이야기에 강하게 동의한다. 무엇인가를 볼 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지금 이 색은 무슨 색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사물을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매일 달리며 만나는 초록잎을 어떻게 명확하게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맛이나 향을 글로 묘사할 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답답함이 느껴진다.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을 듯한 갑갑함. 그렇지만, 뭔가를 하려 하지 말고, 그저 풀들 나무들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알아서 말을 건다.
능수버들 사이, 말라 붙어진 가지를 보면, 해충인가? 하고 가까이 가서 보게 된다. 가서 보면 부러진 가지. 나무 건강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 걱정할 것 없다. 길가의 풀들이 더벅머리처럼 덥수룩 자라 종아리를 스치더니, 뱀이 나오니 주의하라는 현수막과 함께 깨끗이 베어졌다.
가지와 가지 사이로 빼곡히 채워졌던 잎들은 성글어지기 시작했다. 간간히 노란 잎들이 보이고, 진한 녹색을 띠던 숲의 색상이 옅어진다. 탐스러운 꽃을 피운 벼과 식물 흰수크령이 눈에 들어온다. 반려묘 별이 꼬리 같아 괜히 한 번 쓰다듬어 본다.
침대에 누워 손바닥 속 스마트폰으로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고, 만져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직접 봤을 때 느껴지는 공간감, 덩어리감, 만졌을 때의 질감, 향기 같은 것들은 온몸의 감각 세포를 일으켜 세워 관찰해야 뇌 속으로 충전된다.
늘 새벽에 달렸지만, 오늘은 오전 온라인 워크숍 후 한낮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덥지만 운동화를 갈아 신고 나선다. 나무색과 공기가 새벽과 다르다. 물과 물이 합쳐지는 곳의 온도는 확실히 낮다고 내 다리의 피부가 말한다. 늘 만나는 왕벚나무가 양쪽의 두 나무보다 체구가 작다는 걸, 이제야 발견한다. 풀과 나무와 물이 있는 자연에선, 온몸으로 관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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