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작은 한 마리일지라도

중학교 1학년 때쯤, 학교에 다녀오면 속이 울렁울렁 거려 바닥에 누웠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동생의 오랜 투병을 지켜봤기 때문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조그만 증세에도 심각해지곤 했다. 칠판 글씨가 아지랑이 피듯 흔들거리는 걸로, 시력이 약해져 생긴 해프닝으로 끝났었다. 첫 안경은 금색 잠자리 테. 그즈음부터 안경은 계속 함께 했다.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는 깨어있는 시간 내내 소프트렌즈를 썼다. 소프트렌즈는 실리콘 재질로 말랑말랑해 눈에 느껴지는 이물감이 없다. 끼기도 쉽고 빼기도 쉽지만, 수분 함유율이 높으니 눈물을 흡수해 각막이 건조해진다. 저녁을 지나 밤 즈음엔 눈을 깜빡이려면 계속 하품을 하거나, 계속 인공눈물을 넣어야 했다.


그게 불편하면 하드렌즈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드렌즈는 까만 눈동자만큼만 덮어 눈 전체의 산소투과율이 높고, 이물감이 있기 때문에 눈물이 자주 흘러 건조함이 덜하다. 의료의 힘을 빌리려고도 해 보았지만, 각막에 유전적 결함이 있어 수술이 불가능했다. 점점 안경을 쓰는 날이 늘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렌즈를 끼다가, 지금은 그냥 안경과 맨눈으로 지낸다.


운전할 때를 제외하곤, 맨눈으로 지내는 게 편하다고 느낀다. 때론 적당히 흐릿하게 보는 세상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덜 보이고, 보고 싶은 것들은 마음이라는 렌즈를 투과하니 더 크고 선명하게 상이 맺힌다.


달릴 땐, 물론 안경을 쓰지 않는다. 요즘엔 평일엔 4킬로미터 정도를 달리고, 시간이 조금 더 여유 있는 주말은 5~6킬로미터를 달린다. 평일엔 능수버들, 왕벚나무, 소나무와 인사를 나눈다. 세 명의 친구와 인사를 나누는 반가움. 나뭇잎과 가지에 붙은 벌레들도 보이지 않으니,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만지고 싶은 만큼 만지고, 들이마시고 싶은 만큼 숨 쉴 수 있다.


소나무 잎을 고양이 별이를 어루만지듯 두 손으로 쓰다듬고 있는데, 다닥다닥 뭉쳐있는 잎이 있다. 틀림없이 뭔가가 있다. 조심스럽게 잎과 잎을 들어보니, 벌레들이 잔뜩 알을 치고 있다. 잎 사이를 벌리니, 실컷 씹은 풍선껌처럼 양쪽으로 늘어지는데, 그 사이 무화과 씨앗 같은 벌레 알이 펼쳐진다.


그냥 두고 갈까, 응징할까 망설이는데, 이걸 두고 가면 도대체 몇 마리의 성충이 되는 걸까에 생각이 미친다. 안 된다. 비록 손톱 끝만 한 작은 벌레지만, 창궐하는 순간 소나무는 말라죽는다. 본능적으로 박멸해야 한다고 느낀다.


알들이 퍼지지 않게 바닥에 살짝 내려놓고, 마른 나뭇가지를 찾아 잎 사이를 살살 긁어, 누에고치 실에 묻어 있는 것 같은 알 뭉치를 모두 떼어냈다. 바닥에 놓고, 발로 문질렀다. 무엇인가를 돌본다는 건, 때때로 이렇게 모진 손질과 발길이 필요하다.


자라면서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불러오는 비극을 보았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까지. 차마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단어들.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인두에 데이는 것 같이 아프다. 지금 역시 티끌 한 개마저 조심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아무리 작은 바이러스라도 기어이 찾아내 멸균제를 뿌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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