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반복해 듣는 곡 리스트가 있습니다. 폴더명은 ‘글쓸때’. 그 리스트 안에는 가을 아침, 개여울, 그때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1994년 어느 늦은 밤, 걱정 말아요 그대, Only time, Hey Jude,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진혼곡 등이 들어 있습니다. 작년 여름, 이 곡들을 반복해 들으며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를 썼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이유가 부른 ‘가을 아침’이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갑자기 열다섯 살 때까지 살던 집으로 이동합니다. 작은 마당이 있고, 과꽃과 샐비어, 채송화가 피는 더 작은 화단이 있던 집. 유리를 나무 창틀에 끼워 바람이 불면 덜컹거리던 소리가 크게 나던 집. 박달나무 마룻바닥이 걸을 때마다 삐꺽거리던 집. 여러 가지로 불편한 주택이었지만, 그 집에선 소리, 재질, 냄새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장소와 기억을 순간 이동시키는 노래의 힘. 가을 하늘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20대 가수가 어떻게 저런 감성을 담아 노래를 할까,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에너지가 나올까 궁금하고, 부럽습니다. 덕분에 감수성에 불이 들어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곡엔 에피소드도 하나 있습니다.
작년 초가을, 세운상가에서 있었던 서울 도시 비엔날레 행사에 참가했었습니다. 행사장 세팅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귀에 낯익은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제 오른발과 왼발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 자동 반응했습니다. 이른 아침, 작은 새들~ 하는 가사가 흘러나오는 곳엔, 진공관 오디오가 있었어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토닥토닥해 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
세상에, 이렇게 좋은 소리가. 작은 부스 안에 서서 천정과 벽과 바닥을 타고 공명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제가 서 있었던 장소는 세운 부품 도서관으로 세운상가의 부품과 장인의 손길을 통해 태어난 사물들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진공관 오디오의 소리는, 분명 마음으로 성큼 들어왔습니다.
오디오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데, 맑고 투명한 눈을 가진 할아버지께서 저처럼 서서 노래를 들으시는 거예요.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소리가 참 좋네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가요?” 하시는 대답에서 1% 정도의 쑥스러움이 느껴집니다. “혹시, 이 오디오 만든 분이신가요?” “네, 내가 만들었습니다.” 너무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여쭙니다. 저는 언젠가를 기약하며, 류재용 마이스터의 명함을 받아왔습니다.
오늘은 달리며, 가을 아침을 들었습니다. 산책로 주변 나무들에겐 벌써 노란 잎도, 빨간 잎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진 지금, 우린 예술과 감성, 나의 내면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들을 때마다 그곳으로 이동하는 음악, 읽을 때마다 그곳을 함께 거니는 것 같은 글이 짝꿍이 되어 주지 않을까요.
https://linktr.ee/jaekyung.j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