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깨지는 큰 이별을 만난 분들께
제 방 작은 책꽂이 위, 벽에 기대 올린 100호 남짓 되는 그림은 ‘emotion’입니다. 바탕 전체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 위에 미꾸라지 모양의 흰색 감정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100마리도 더 되어 보이는 녀석들은 몸을 배배 꼬았다가 활짝 웃었다가, 서로의 몸을 칭칭 감았다가, 내뺐다가, 한 모양으로 나란히 서기도 하며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습니다.
책꽂이에도 노란색들이 듬성듬성 꽂혀 있어요. 고개를 돌려 책상 위로 시선을 옮기면 켄우드 샛노란 전기 주전자, 샐리 얼굴이 달린 노란 라미 만년필, 피버 카르텔 노란 색연필들이 눈에 띕니다. 매일매일 아침에 글을 쓰는 노트도 순도 높은 노랑이고요. 제가 좋아하는 노랑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정직한 노랑입니다.
아침에 달려 나가며 벚나무 사이 노랑에 눈길이 꽂힙니다. 그 노랑은, 보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분명 제가 좋아하는 노랑인데,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초록색의 채도가 떨어지며, 군데군데 보이는 단풍은 곧 여름과의 헤어짐을 암시합니다. 이제 곧 나무가 노랗게 물이 들겠지요. 바람결에 하나 둘 떨어지며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걸 안쓰러워 어떻게 볼까요.
헤어짐엔 내성이 없습니다. 저는 열두 살, 만으로 겨우 열 살 때,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만났어요.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 해도 어떻게 안 되는 죽음. 이 년 남짓 서서히 죽어가던 동생을 보며, 아마 제 마음도 함께 말라 붙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만 12세 미만의 상실은 해마를 쪼그라들게 할 만큼 큰 일이었더군요.
저야 사고 같은 이별이었지만, 한국전쟁이 나라 전체를 쓸고 갔던 경험은 어쩌면 그 세대의 뇌를 쪼그라들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집마다 개인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어르신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도대체 그게 인간계에서 가능한 일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 역추적해 올라가다 보면, 가슴 아픈 장면들이 여럿 있어요.
한겨울 피난길에 쫓겨 가던 세 살짜리 아이 신발이 벗겨져 맨발로 강을 건넜던 얘기, 혜화동 서울대학교 병원 앞 구더기가 들끓던 시체더미, 없는 살림에 아들에게만 달걀 프라이를 해 주었던 그 시절의 어머니들, 딸로 태어나는 건 마이너스 200점을 안고 시작했던 그때 그 시절, 고구마 두 개 먹으며 하루 종일 공부했던 이야기, 전차에 다리를 잘렸지만 마취제가 없어 그냥 수술했던 일. 어르신들이 꺼내시는 속 이야기만 그대로 받아 적어도 중편 소설 한 권 분량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개인의 삶은 비틀리고 뒤틀어졌던 것 같아요. 그 이야기들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오신 고모, 고모부, 사돈 어르신, 한 분 씩 한 분 씩 이별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함께 슬퍼하는 일조차 벽이 쳐지니, 눈물을 가득 머금은 마음이 소나기를 품은 먹구름처럼 무겁습니다. 이별에도 백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음이 깨지는 큰 이별을 만난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잘하지 못 했더라도 스스로를 너무 원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셨을 거예요. 아낌없이 잘한다고 잘했어도, 아마 선택하지 않은 다른 쪽에 대해 후회가 남을 것입니다. 어차피 우린 나중에 다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도록, 오늘을 꽉 채워보시면 어떨까요. 그건 열두 살의 제가, 저에게 해주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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