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내리고 글을 씁니다. 보통 한 페이지를 적는 데 20분 내외가 걸립니다. 글의 내용은...... 음. 무엇을 썼는지 모릅니다. 다시 생각해보지도 않고, 물론 다시 읽어 보지도 않습니다. 그 훈련은 운동선수로 말하자면 몸풀기 운동 같은 것으로, 그냥 손의 신경과 연결된 뇌의 신경을 사용해 보는 것입니다.
조금 더 전문가처럼 말씀드리자면,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며 그냥 적는 데 의의가 있다고 <아티스트 웨이>에서 줄리아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매일매일 쓰지만, 걸리는 시간은 매일매일 다릅니다. 별일 없는 일상이 이어질 때엔 비교적 고르게 20분 정도의 속도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며 시간을 점검하는 것은 저의 자원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빼곡한 스케줄이 있으면, 23분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겨우 3분 차인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무려 15% 차이입니다. 제 시간과 에너지를 15%나 더 투입하고 있는 셈이니, 이럴 땐 일을 조금 줄이는 편이 좋습니다. 신호등에 걸려 기다리는 것보다 30킬로미터의 속도라도 계속 가는 편이 안정적인 산출물을 내기 좋습니다.
반대로 20분 정도 걸렸다 치면, 하기로 한 일들 사이에 다른 일들을 조금 더 끼워 넣어 봅니다. 21~2분 정도 걸렸다 하면, 적어 놓은 일들이라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렇게 컨디션을 조절하며, 업무량과 정신줄을 배정합니다.
이 중간에 조심해야 할 점은 스마트폰입니다. 일정을 입력하려 스마트폰을 들었다간, 바로 20분 30분 순삭입니다. 제게 스마트폰은 시간을 잡아먹는 귀신입니다. 그 안의 정보들을 다 안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도, 수시로 체크하게 되는 걸 보면 중독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침 시간엔 수첩과 노트를 이용합니다. 일정을 기록하거나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두는 노트가 있습니다. 2020년 날짜가 모두 적힌 하늘색 로이텀 포켓 다이어리와 중앙일보 2020년 플래너를 노트로 씁니다. 점점 줄여 하나로 만들고 싶지만, 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니 점점 늘어납니다.
가방 속엔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도 있지만, 파브리노 스케치북과 피버 카르텔 스케치용 샤프도 있습니다. 어떨 때 감성이 더 예민하게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 갖고 다닙니다. 게다가 읽고 있는 책들이 보통 몇 권 씩 들어 있어 가방이 점점 더 바위 같아져요.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할 때엔, 스마트폰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합니다. 그래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길 포기할 순 없어 어쩔 수 없이 몸에 붙들어 맵니다. 팔에 묶고, 화면을 보려면 멈춰 팔의 벨크로 테이프를 떼야합니다. 그렇게 기록한 날들이 스마트폰 속에 가득합니다. 든든해요.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면 눈으로, 귀로, 코로, 많은 감각 정보들이 들어옵니다. 지금 이 순간. <공간을 사람을 움직인다>에서 실재하는 자연 속을 걷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서 고유한 순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눈인사만 나누던 어르신께서 이름을 여쭈셨습니다. 이름을 불러 주어 꽃이 된 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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