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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ug 27. 2020

좋은 기운을 얻으려면

자연의 색을 담은 그림

  <그림의 역사>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물감은 반드시 좋은 물감을 써야 한다며,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가장 비싼 물감을 구입하라 이야기합니다. 비싼 물감일수록 오랫동안 선명한 색상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보존성이 가장 좋은 유화 물감에 익숙해지라 조언합니다.  

  ‘더리빙팩토리브랜드 카탈로그를 찍을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다섯  그렸습니다. 하나는 초록색 들판과 라벤더  구름이 피어나는 들판을 추상화한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한참 물이 올라 예쁘던 수채화 고무나무의 사진을 클로즈업  그렸습니다.

   다른 시리즈는, 화이트 베이스에, 모래 질감의 텍스처를 섞어 까슬까슬한 마음을 표현했고, 샛노란 물감으로 매끈하게 표현한 그림, 녹색으로 어울리는 패브릭과 매치한 실험작도 있었습니다. 후다닥 그린 그림 치고는 오랫동안 에너지를 주어, 집에서도 가장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좋은 기운을 얻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 저 말고도 그런 에너지를 느끼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림 구입 문의를 받고 깜짝 놀라, 답을 드리지 못한 적도 있어요. 그렇게 마음에 드는 습작들인데,   지나니 안타깝게도 색이 조금씩 날아가 처음의 생동감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번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조언을 따라, 가능하면 비싼 유화물감으로 그리려 마음먹고 화방에 들렀습니다.

  신한, 반 고흐, 홀베인, 르프랑, 윈저 앤 뉴튼, 램브란트 등등 화방  벽을 가득 채운 물감들 속에서 원하는 색을 찾아내는 데만도 두어 시간이 걸렸습니다.  브랜드 별로 색상 표현이 미묘하게 달라, 고르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홀베인이라는 브랜드에서 마음에 드는 색상들을 골라 바구니에 담으니, 금세 예산을 훌쩍 넘겼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하며, 나뭇잎의 색들이  물감색처럼 다양하다고 느꼈습니다. 같은 벚나무의 잎이라도, 새로  잎은 조금  연두색에 가깝고, 투명합니다. 오래된 잎일수록 진한 색을 띠고, 불투명합니다. 자라는 동안, 엽록소의 밀도 역시 촘촘해졌을 테니까요.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용버들의 잎은 앞을 보는 면과 뒤쪽 그늘진 면의 농도차가 있습니다.  앞에서 해를 받고 있는 잎은 명도와 채도가  높고, 그림자가 드리운 잎일수록 비리디언 색에 가깝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자연은 물감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으니, 물감이 자연을 닮은 것입니다.


  밤새 태풍이 불어, 낙엽들이 그린 그림이 바닥에 펼쳐져 있습니다. 노랑, 밤색, 녹색, 빨간색. 가을을 옮기려면 새로운 색 물감이 필요하겠습니다. 지름이 2센티미터는 될까 싶은 아카시나무가 똑 부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비바람 몰아쳐 드러누웠어도  부러지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르는 바랭이 풀처럼 그림도 그리고, 일도 하며, 유연하게 넘어 보도록 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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