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다시 읽었습니다. 책을 처음 읽을 땐 빠르게 읽는 데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읽는 건, 초벌구이 하는 느낌이 들어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독서의 느낌. 책 한 권을 다 읽고, 여운이 계속 남는 책들을 모아 생각이 날 때 또 읽습니다. 한 책을 재벌구이쯤 하면 조금 더 단단한 지식으로 남습니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는 하버드 뇌연구소 연구원이던 질 볼트 테일러 박사가 유전적 결함으로 인한 뇌출혈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읽을 때에는 뇌출혈과 회복 과정의 ‘사건’에 집중했는데, 이번엔 뇌의 기능과 회복에 대한 후반부가 인상 깊었습니다. 올해 초, 뇌 과학 서적을 몰아 읽기 했던 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좌뇌는 이성의 영역이고, 우뇌는 감정의 영역으로 이야기합니다. 사무적인 일을 하는 뇌는 좌뇌라 할 수 있고, 글을 쓰는 등 창작 활동은 우뇌 관할 영역입니다. 일에 중심을 두고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전혀 다른 뇌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을 하다 글을 쓰려면 스위치를 바꾸려면 전환에 한두 시간 정도 필요했습니다. 반대로, 글을 쓰다 일을 하려면 또 한두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빨리빨리 전환이 되지 않으니 어찌나 답답하던지요.
지금은 일을 하다 글을 쓸 때와 글을 쓰다 일을 할 때 전환에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줄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쓸 때도 있고, 글을 쓰면서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뇌는 필요한 대로 세포의 회로도를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수학은 잘하는 편이었는데, 요즘 숫자 계산이 어려운 걸 보면 정말 배열이 달라졌나 합니다.
요즘엔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4개월의 달리기 과정을 돌이켜 볼 때 가장 신이 났던 순간은 보슬비가 내리는 인적이 드문 산책로를 가슴을 활짝 펴고, 양팔을 가로로 뻗고 얼굴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달리던 순간입니다. 피부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촉은 실크가 흐르는 것처럼 보드랍고, 팔과 겨드랑이를 지나는 바람의 소리는 고양이 별이처럼 친근합니다. 규칙적으로 고인 물에 닿는 발자국 소리는 왠지 자신감을 불어넣어요.
질 볼트 테일러 박사에 의하면, 서로 다른 감각 회로가 자극될 때 주의 깊게 살피는 훈련을 하면 자극 기능이 더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매일 다른 나무, 풀들을 관찰하며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산책로 달리기는 알게 모르게 우뇌를 활성화시킨 거예요. 덕분에 매일매일 쓰고 싶어 졌고, 또 실제로 매일 쓰고 있습니다.
질 볼트 테일러 박사 역시 비 내리는 거리를 걷길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감각을 깨우는 것은 시선을 ‘지금 여기’로 가져와 감사한 마음을 갖게 돕는다고 합니다. 비 맞으며 달리는 것은 의외로 치료의 효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뇌의 기능이 활성화되면 마음이 평화롭게 되니까요.
좌뇌에서 그러네요. 매일매일 달리고, 매일매일 쓰면 뭐하냐고요. 두터워진 제 우뇌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큰 결과물이 없더라도, 지금 시냅스와 미토콘트리아들은 튼튼해지고 있는 중일 거라고요. 뇌와 몸은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도구니, 그냥 하는 거라고요.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지치고 힘든 시간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선 감각을 깨우고, 지금 여기로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마침 내일도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요. 태풍이 도착하기 전이라면 비 맞으며 달리기, 같이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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