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읽었습니다. 요리책을 표방하지만 사진이 한 장도 없는 실용서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원칙 하에 쓰인 책입니다. ‘가능한 한 밭에서 딴 재료를 그대로 쓰고, 비타민과 효소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낮은 온도에서 짧게 조리하고, 가능한 한 양념을 치지 않고, 접시나 팬 등의 기구를 최소한 사용한다’.
헬렌 니어링 박사와 스코트 니어링 박사가 즐기던 음식 중엔 ‘말먹이’라 이름 붙인 음식이 있습니다. 껍질을 벗겨 찐 다음 롤러로 으깬 귀리에 건포도를 넣고, 레몬 즙을 더하고, 소금을 약간 친 다음, 올리브 유나 식용유를 더해, 재료를 모두 넣고 휘휘 저어 조리한 다음, 이걸 나무 그릇에 담아 나무 숟가락으로 먹는 요리입니다. 이 조리법에 의하면 설거지는 그릇 세 개에 숟가락 두 개입니다.
‘양배추 냄비 요리’를 하나 더 볼까요? 식용유, 양배추, 샐러리, 양파, 토마토, 피망, 메이플 시럽을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달군다. 재료를 모두 넣는다. 뚜껑을 닫고 가끔 저어 가면서 15분 간 익힌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역시 설거지 거리도 냄비 한 개에 그릇 두 개에 그치는 소박한 밥상입니다.
그래도 스코트 니어링 박사와 헬렌 니어링 박사는 의사를 만날 일이 없을 만큼 건강했습니다. 1954년에 출간한 ‘조화로운 삶’에서 니어링은 땅에 발 붙이고, 먹을거리를 유기농법으로 손수 길러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말합니다.
두 부부는 돈을 벌지 않고, 해마다 6개월만 일하고 6개월은 연구, 여행, 대화, 가르치기 등을 하며 보냈다고 합니다. 현금이 필요한 일은 메이플 시럽과 메이플 사탕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요. 그렇게 절약한 시간과 에너지로, 두 부부는 생전에 63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니어링 부부가 20년 동안 살았던 버몬트는 타샤 튜더의 정원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타샤 튜더는 57세에 30만 평의 땅을 구입하고, 30년 동안 정원을 가꿔 전 세계에서 유명한 정원이 되었습니다. 타샤는 9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연과 가까이하는 것은 건강에 아주 중요합니다.
실제로 독일의 의사 다니엘 고트롭 슈레버 박사는 환자에게 ‘햇볕에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채소를 기르라’는 처방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집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요즘, 자연과 계속 떨어져 있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식물 화분이라도 더 놓아야 할 것 같아요.
태풍도 오고, 코로나로 밖에 나갈 수 없는 오늘, 답답한 마음을 누르고 <소박한 밥상> 레시피 중 하나를 조금 응용해 봅니다. 납작 오트밀 3컵, 중력분 2컵, 버터 1컵, 설탕 1/2컵, 단풍나무 시럽 1/2컵, 바닐라 에센스 1t, 소금 1.5t, 계핏가루 1t, 계란 2개, 건포도, 호두를 넣어 200도 오븐에 15분 정도 구웠습니다. 소박한 오트밀 쿠키, 맛도 좋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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