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일 편지 | 엄마의 따뜻한 잔소리가 그리울 때
아들이 6학년이 되었을 때, 방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 무렵이 되면 방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습니다. 태어나면 고개를 가누고, 몸을 뒤집고, 기고, 걷는 것처럼 누구나 겪는 일이고, 다 지나가는 일입니다.
다만, 아들은 한여름에도 창문과 문을 닫고 지냈습니다. 엄마가 창문을 열고 방을 나오면 아들은 창문을 다시 닫았습니다. 에어컨을 켜면 바람 소리가 시끄럽다며 껐습니다. 그 더운 날 아들은 이불을 덮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고, 아무리 과학 상식을 이야기해도 아들은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끄고, 에어컨의 전원을 내렸습니다.
장마철이 지날 때쯤부터는 방에서 곰팡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옷장 뒤쪽에선 더 심한 냄새가 났습니다. 매끈했던 아들의 등 피부에서 뭔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두 번의 여름을 보내곤 세 번째 여름이 왔을 땐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관계는 똑같았습니다. 생물학적 유전자도 달라진 점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처럼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말을 하다, 말이 안 통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화가 토막 났습니다. 지반에서 대륙이 떨어져 나갈 때처럼 아이와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시기는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고 있을 때였고, 가족은 온종일 집에 함께 머물렀습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대화를 할지 잃어버린 제게 남편은 말 대신 글로 적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습니다. 주황색 다이어리에 글을 썼습니다. 아무 말하지 않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고, 그 노트는 늘 아이 머리맡에 있었습니다.
깊은 바다색 잉크로 쓴 편지를 읽으며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아들 방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을 깜빡 한 날엔, “엄마, 주황 노트 어딨지?”하며 찾았습니다. 말은 안 통했어도 글은 통했습니다. 노트 두 권을 다 써갈 때쯤 아이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며 매일 편지를 써 주어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엄마, 우리는 언젠가 떠나잖아. 엄마가 떠나고 나서 이 노트를 읽으면 너무 슬퍼질까 봐 나는 벌써 그게 걱정이야. 그래서 엄마가 떠나면 이 노트를 없애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너무 슬프겠지? 그래도 그 노트는 없애진 말고,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그때 주면 어때? 사춘기를 지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 아이는 다음 세대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슬프진 않을 거야.”라고 답했습니다. 아들은 그래야겠다며 걱정을 던 듯했습니다.
사춘기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어떤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의미를 재정의하고, 엉킨 타래를 스스로 풀어가는 시간입니다. 때로는 부모의 뜻에 맞설 줄도 알아야 거친 세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힘이 생깁니다. 가정에서 사랑이라는 햇빛을 받으며, 단단한 지지에 깊게 뿌리를 내린 한 사람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2021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편지는 2023년 3월 14일까지 매일 이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20일은 간간히 이어지다, 5월 8일 마무리됩니다. 총 809일간의 편지입니다. 그 사이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했고, 이제 고등학교 마지막 과정에 있습니다. 아들에게 이 글을 공개해도 되냐 물었을 때, 사생활이 너무 노출된다며 망설였지만, 엄마의 자리가 비어 있거나, 부모와 소통이 안 되어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생각해 보라는 말에 연재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인생에 있어 사춘기는 발달단계이자 통과의례입니다. 철이 일찍 들어 사춘기 없이 지나간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사춘기를 겪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사춘기를 지나는 모든 우리들을 토닥이며 시작합니다. 자기만의 사춘기를 지나는 분들께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정재경 작가
작가 엄마가 사춘기 아들에게, 809일 동안 쓴 편지를 연재합니다. 자기만의 사춘기를 지나는 분들께 따뜻한 다독임이 되길 바랍니다.
제안 및 문의 hello@crsh.kr
809일 편지~~~
정말 좋~~은 엄마시네요~
아들이 정성껏 써내려 가는 엄마의 편지를 읽으며
얼마나 든든했을까요?
'사춘기' 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마음을 몰아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 사춘기에 함께 걸어주신 @정재경 작가님이 있었기에
아들이 긍정적으로 성장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멋진 엄마!
아이를 위해서 내 감정을 침묵해주신 좋~~은 엄마세요~
저도 아이들에게 가끔 편지를 썼었지만 하루도 빼놓치 않고 꾸준히 썼던 적은 없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모두 결혼을 해서 자신들의 아이를 낳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 해서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작가님처럼 그렇게 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입니다.
초록별쌤님!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댓글을 아들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가만히 듣더니, 감사하시다. 하더라고요. 그런데, 전문가가 보시기에, 사춘기 자녀에게 편지를 써 주는 방법이 효과적인지요! 육아 선배님, 상담 전문가님께서 좋은 방법이라 해 주시니 주변에 자신있게 권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진정 부모다운 부모십니다! 대단하다는 칭찬보다 애썼다는 토닥임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드님은 복받으셨네요.존경하는 부모를 가지셨으니절반은 성공한 삶이네요.
초등4학년ᆢ벌써 예전같지 않은 손녀에게 저도 편지를 써 볼까 합니다.
작가님처럼 긴 세월 빠짐없이 쓸 수 있으리라는 결심은 서지 않지만ᆢ
큰 울림을 주신 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