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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는 날

소설 빨간 모자

윤아의 머리카락은 단풍 든 은행나무 잎처럼 후드득 떨어져 모두 사라졌다. 윤아는 머리카락이 없어진 다음 집 바깥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때를 노려 짱구 과자 사러 가자 꼬드겨 보아도 대문 앞에 돌하르방처럼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병원도 가고, 학교도 가야 하는데 고집불통이었다.


보다 못한 엄마는 굳은 얼굴로 지갑을 챙겨 대문을 나가셨다. 돌아온 엄마의 손엔 검은 비닐봉지가 틀려 있다.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꺼내는 엄마 손에 검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흠칫 놀라면서도 숨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눈썹쯤 내려오는 앞머리부터 뒷머리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단발 기장의 가발이었다.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고급 제품이라고 했다. 밝은 갈색으로 윤아의 흰 얼굴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예뻐요. 엄마. 저도 이런 게 있어 얄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먼저 써 봐라.”

나는 군말 없이 가발을 썼다. 엄마는 내 어깨를 잡고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가발 상태를 점검했다.

“괜찮다. 윤아 좀 데리고 와 봐라.”

벌써 저쪽 방에서 윤서와 윤지가 윤아 등을 밀고 데리고 온다.

“언니, 써봐, 써봐.”

셋째와 넷째가 부추긴다. 나도 거든다.

“이 가발, 너한테 너무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일부러 염색한 것처럼 밝은 갈색이야. 너무 예쁘잖아. 부럽다, 윤아야.”

윤아가 엄마 앞에 앉는다.

“거울 갖다 줄까?”

얼른 엄마 화장대에서 플라스틱 손잡이 달린 동그란 손거울을 가져온다. 엄마가 윤아가 머리 위에 가발을 씌움과 동시에 우린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쁘다. 잘 어울려!”라고.

“그래?”

윤아 얼굴에 미소가 스치고 지나간다.

“응, 진짜 머리카락 같아. 너무 잘 어울려!”

“이제, 학교도 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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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경 식물인문학자···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8년째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쓰는 사람. 10년간 식물 200개와 동거하며 얻은 생존 원리를 인간 삶에 적용, 식물인문학 기반 라이프 리디자인을 통해 회복탄력성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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