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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Oct 16. 2020

다시 출근하는 그대에게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


괜찮겠어?

출산 전에 아내는 내게 몇 번이고 확인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본인이 다시 일을 해도 괜찮겠냐고. 혼자서 아이를 돌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 질문은 나를 못 믿어서 하는 게 아니었다. ‘아내’인 본인이 다시 일을 하는 동안 ‘남편’인 내가 서포트를 해줄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아내는 임신과 출산, 육아로 예전처럼 일을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깊이와 강도를 헤아리지 못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의 아내의 눈빛이 누군가와 묘하게 닮아있었다. 나는 그 눈빛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몇 년 전, 동료의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방송작가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돌이 갓 지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글을 잘 쓰기로 유명했던 선배는 아이를 출산하고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했다. 선배는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했지만 이대로도 괜찮은 건지 불안해했다. 선배의 글이 그리웠다. 식사를 마칠 즈음 나는 선배에게 언제 다시 복귀하실 수 있는지 물었다. 선배는 눈을 작게 뜨고 한숨 같은 문장을 내뱉었다.

그럴 수 없어.

선배는 아이를 데리고 먼저 일어났다. 나는 동료들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지금 회사의 한 여자 동료도 생각났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오며 가며 인사를 했던 대리님은 일을 깔끔하게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를 하지 못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일을 그만둬야 했던 것이다. 마지막 날 눈시울을 붉히던 그녀에게 나는 어떻게 안녕을 고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땐 그녀의 마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웃고 울며 일했던 그녀의 회사생활이 작은 상자로 치환되었다. 그 상자엔 그녀의 출산 전 모습만 담길 수 있었다.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보고 그녀는 평소처럼 웃을 수 있었을까.

누구보다 그림 그리는 걸 사랑하고 동료들과 작업하는 걸 즐겨하는 아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내는 골똘히 골몰하는 나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사를 잊은 연극배우처럼 벙하니 아내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다시 한번 묻자, 그제야 정신을 차려 답했다. 나는 당신 몸이 허락하는 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당신이 10개월 동안 아이를 위해 고생했으니, 이번엔 내 차례라고 말했다.

출산 후 세 달이 되었을 즈음, 아내는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에 합격하여 첫 출근을 했다. 한 달에 30시간만 하는 업무라 많은 체력을 소모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아내는 일러스트 외주 일을 받아서 했다. 매일 마꼬와 포카를 그리는 개인작업뿐 아니라, 올 겨울을 목표로 동료들과 전시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 보였지만 나는 말리지 않았다. 모아둔 돈이 줄어드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예상보다 영유아 육아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아내가 일을 하러 나가는 횟수가 늘어나며 혼자서 마꼬와 있는 날이 늘어났다. 엄마보단 못하지만 다행히 마꼬가 아빠를 좋아라 했다. 나도 마꼬와 있는 게 좋았다.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가 크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는 게 기뻤다. 하루하루가 기적 같았다.

하지만 그 기적을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이기엔 혼자 하는 육아는 벅찼다. 마꼬뿐 아니라 20kg의 중형견 포카까지 챙겨야 하니 정신이 없었다. 포카가 실외 배변만 하기 때문에(반려견에겐 정서적으로 좋은 거다) 마꼬를 힙시트에 둘러업고, 포카 산책을 하러 가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다. 왜 엄마들이 냉동해둔 미역국만 먹는지 알 것 같았다. 살림하랴 육아하랴 밥 먹을 시간조차 부족했다. 간장에 밥 비벼먹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꼬는 울고, 포카는 심심하다며 뛰고, 집은 엉망진창이고. 말 못 하는 두 녀석과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면 가슴 한편이 답답해서 뻐근할 지경이었다. 마꼬를 목욕시키고 겨우 재우고 나면 나도 방전됐다. 독박 육아를 한 날은 꼭 맥주를 마셨다. 맥주가 유일한 숨통이었다.

어떻게 혼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맥주를 마시며 늘 생각했다. 여자들은 어떻게 이런 일상을 매일 반복했던 것일까. 왜 이런 상황을 사회는 당연하게 여기는 걸까. 임신으로 10개월 동안 고생하고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질 정도의 고통을 견뎌내 아이를 낳았는데, 육아도 왜 (주로) 여자가 하는 걸까. 아직 몸도 회복 안 됐는데, 그것도 독박으로. 도무지 산후 우울증이 안 생길 수가 없겠다. 왜 사람들이 비혼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부모가 합심해 아이를 돌보는 공동육아만큼 이상적인 육아방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육아를 하고 싶어도 정부에서 주는 육아휴직 지원금 갖고는 택도 없다. 부부 중 한 명이라도 고용보험 미적용자이면 더 답이 없다. 고용보험 미적용 여성인 아내(프리랜서)는 회사원들에 비해 출산 지원금도 차별받더니, 육아휴직을 대체할 만한 어떠한 제도도 이용할 수 없었다. 한 달에 50만 원으로 생활하라는 것도 황당한데, 그 이후에는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임신을 하는 순간 저소득층이 될 수밖에 없는 고용보험 미적용(자영업, 프리랜서, 특수계약직) 여성들은 육아를 하는 순간부턴 철저히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이다.

이쯤 되자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법과 제도를 이렇게 설계해놓고 출산율 얘기는 왜 꺼내는 걸까. 국회의원들은 독박 육아를 한 번이라도 해봤을까. 국회에 여성의 수가 적어서 이 모양 이 꼴인 걸까. 엄마란 이름으로, 모성애 신화와 서사를 여성에게 씌우면서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

페미니즘 저널 <일다>에 게재된 ‘통계를 통해 보는 여성노동 50년의 변화’에 따르면, 20대 여성은 남성보다 고용률이 높은데 반해, 30대엔 여성의 고용률이 급락했다. 특히 35-39세의 성별 고용률 격차는 31.2%나 된다. 필자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소속 김난주 부연구위원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 따른 여성의 경력단절을 그 이유로 꼽았다.


한국에서 남성에게 결혼은 안정적인 경력 형성의 출발이 되지만 여성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 ‘연령별 성별 고용률통계에서 수년간 증명되고 있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나는 통계를 보며, 여성의 성 역할일 뿐인 ‘모성’을 성스럽게 만들고, 이를 이용하여 30대 여성에게 육아란 짐을 홀로 짊어지도록 했던 지난 50년의 세월이 무섭게 느껴졌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기까지 필요한 건 수많은 82년생 김지영의 경력단절이 아닐 텐데, 왜 우리는 30대 여성의 희생을 자양분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걸까.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내년엔 어떻게 해야 할지 장담할 수가 없다. 지금이야 육아휴직을 하고 있지만, 내년에 내가 회사로 복귀하면 아내는 과연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앞으로 마꼬 육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농담 같은 현실을 실컷 비웃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참담했다.




다시 출근하는 아내를 보는 내 마음은 그래서 복잡했다. 고맙고 미안했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아내에게 특별한 요리를 해주기로 했다. 아내가 쉬는 날,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를 메뉴로 정했다. 마트에는 오리 가슴살만 따로 팔지 않아서 재래시장에서 오리 한 마리를 사며 가슴살을 따로 분리해달라고 주문했다.

우선 오리 가슴살에 칼집을 내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두었다. 가슴살의 껍질에서 기름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팬에 올리브유를 조금만 두르고 껍질부터 굽기 시작했다. 색이 갈색으로 변하면 뒤집어서 골고루 구웠다.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는 미디엄 레어가 맛있다는데, 아내의 취향은 웰던이라서 나는 좀 더 구웠다. 어느 정도 익으면 버터를 넣고 기름을 스테이크에 끼얹은 다음, 접시에 옮겨 10분 정도 레스팅 했다. 그동안 재빨리 소스를 만들었다.

둥그렇게 썰은 당근을 끓는 물로 적당히 익혔다. 오렌지를 으깨서 즙을 만든 다음, 냄비에 오렌지즙과 당근을 넣고 끓였다. 수분이 충분히 날아간 거 같으면 버터를 넣고 졸였다. 레스팅이 끝난 스테이크를 자르고 그 옆에 소스를 담았다.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와 함께 샐러드, 찐 감자, 맷돌호박 수프를 식탁에 올렸다.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쏟은 덕분에 식탁이 풍성하고 예뻤다. 아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했다. 아니, 육아휴직 전만 해도 김치찌개밖에 못 끓이던 남편이 이런 요리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육아휴직이 사람 하나 제대로 바꿔놓았다.

다행히 음식 맛도 괜찮았다.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는 처음 먹어봤는데 전혀 질기거나 뻑뻑하지 않았다. 껍질이 잘 구워져서 바삭했고 웰던으로 구운 속살은 생각보다 연하고 고소했다. 특히 오렌지 소스가 오리 고기와 그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다. 새콤달콤한 오렌지와 고소한 버터를 담뿍 흡수한 당근이 달달하니 환상적이었다. 그 환상적인 소스를 듬뿍 올려 스테이크를 먹었으니,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내 응원과 요리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내는 좋아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어 한결 얼굴 표정이 좋아졌다. 생기가 돌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좋은 에너지를 받은 덕택에 집으로 돌아와서도 예전처럼 기운이 뻗쳤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꼬마 아이처럼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한참을 쫑알댔다. 반나절 못 봤을 뿐인데 너무 보고 싶었다며 마꼬를 꼬옥 안으며 둘이 신나게 놀았다.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면서 나는 두 사람이 다시 떠올랐다. 결혼식장에서 만났던 방송작가 선배와 회사 동료였던 대리님은 어떻게 지낼까. 이제 아이들이 제법 컸을 텐데. 남편들이 육아휴직을 한다면 그들도 다시 일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마저 모른 척할 순 없을 것 같았다. 혼자서 육아를 하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이제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더 이상 그녀들이 나와 무관하지 않게 느껴졌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이번 요리는 TVN <수미네 반찬>에서 최현석 셰프가 보여준 레시피를 참고했어요. 최현석 셰프는 오렌지 주스를 사용해서 소스를 만들던데, 오렌지주스는 설탕이 많이 들어 있어서 저는 산모가 먹을 걸 감안해서 집에 있는 오렌지를 착즙해 사용했어요.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에는 대부분 자몽을 곁들여서 함께 먹더라고요. 저는 당시에 동네에서 자몽을 구할 수 없어서 생략했어요. 자몽의 약간 쓰면서도 새콤한 맛이 잘 어울린다고 해요. 저도 그 맛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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