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고추 완두콩 볶음(창잉터우)
영화 <미래의 미라이>에서 오빠 쿤은 동생 미라이가 태어나 부모의 관심이 온통 동생에게 쏠리자 설움에 북받쳐 아기처럼 칭얼대며 퇴행 현상을 보이거나, 엄마 아빠가 없을 때 동생을 때리는 등 폭력적인 양상을 띄었다.
그래서였을까. 요즘 포카도 영 제멋대로다.
잘하던 하우스 교육이 엉망이 됐다. 산책 흥분도가 높아져 줄을 당기는 게 더 심해졌다. 다행히 마꼬에겐 해코지를 하지 않았지만, 산책 중 다른 개에 대한 과반응이 심각하게 강화되었다. 그런 포카의 줄 당김을 고쳐보려고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다른 개를 보고 흥분하는 포카를 말리다가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막무가내인 사춘기 딸과 싸우는 꼰대 아빠가 된 심정이었다.
포카에게도 포카만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었다. 포카가 변하게 된 원인을 추측해보면 다양했다. 밤낮으로 우는 마꼬로 인한 수면부족, 마꼬 예방접종 때문에 세 인간이 갑자기 집을 비우면 분리불안이 도졌고, 한편으론 마꼬를 택배 기사님들로부터 지켜야겠다는 과반응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애정결핍이 아니었을까. 마꼬를 달래고 어를 때 포카는 항상 우리 곁을 맴돌았다. 마꼬가 겨우 잠이 들면 그제야 포카는 꼬리를 흔들며 장난감을 물고 와 놀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방전된 우리는 쓰러져 자기 바빴다. 뾰류퉁해진 포카가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삑삑- 소리를 내면 아이 깨니까 조용해야 한다며 장난감을 뺏었다. 그 말을 할 줄 몰랐는데 나도 포카에게 하고 말았다.
“포카가 누나니까 좀만 참자.”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동생의 등장은 아이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다고 한다. 책 <3세 아이 잘 키우는 육아의 기본>에 소개된 한국아동발달센터 한춘근 소장은 동생이 생긴 아이의 심리적 충격을 “비유하자면 ‘왕이 폐위됐을 때’와 비슷한 격”이라고 설명한다.
나도 아내도 집안에서 막내라 첫째의 설움을 모른다. 우리 부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포카가 얼마나 큰 상실감을 겪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 포카에게 매번 네가 참으라고 했으니 이 녀석 얼마나 분통 터졌을까.
한편으론 포카가 스트레스를 애꿎은 다른 개들에게 푸는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동네의 다른 개들과 견주 분들에게 미안했다. 때문에 포카가 안쓰럽다고 마냥 잘해줄 수만은 없었다. 유튜브에 있는 반려견 훈련사들의 영상을 보고 공부하여 몇 가지를 포카에게 적용해 보았다.
문제 행동을 교정할 때는 자율 급식보단 제한 급식이 낫다고 하여 바꿔보았다. 사료와 간식을 산책할 때만 줘서 포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산책 중 포카가 만나는 수많은 자극 중에서 내가 제일 흥미롭고 나와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걸 알려주고자 했다. 이를 통해 포카를 외부 자극으로부터 무감하게 만들 계획이었다. 시중에 파는 일반 간식으론 흥분한 포카의 관심을 돌리기 어려워 간식도 직접 만들었다. 브로콜리, 고구마, 닭가슴살, 다진 돼지고기 등을 찌고 데치고 구워서 사료와 함께 밖에서 먹였다. 이론은 완벽했다.
그런데 웬 걸. 내가 산책 교육을 잘 못하는지, 포카가 똑똑한 건지, 받아먹을 건 다 받아먹고, 다른 개를 보고 짖을 건 또 다 짖었다. 어휴. 물론 너무 흥분해서 산책 중에 간식을 전혀 먹지 않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발전이지만.
사람도 나쁜 습관을 바꾸기 어렵듯이 반려견도 하루 이틀 교육한다고 바뀔 리가 없었다.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해야 된다고들 해서 본격적으로 간식을 구비해놓았다. 특히 다진 돼지고기는 요리에 써먹기 좋은 재료라서 우리도 먹을 겸 잔뜩 사서 냉동실에 소분하여 얼려두었다.
이 즈음 잘해 먹었던 것이 꽈리고추 완두콩 볶음이었다. 조리 방법은 대만의 밥도둑이라고 하는 창잉터우를 참고했다. 모양이 파리머리를 볶은 것 같다고 해서 ‘파리머리 볶음’이란 뜻의 창잉터우는 본래 마늘종을 다진 돼지고기, 고추와 함께 볶는 요리이다. 볶은 마늘종을 좋아해서 아내와 종종 해 먹었는데, 산후조리 기간에는 마늘종 대신 매운맛이 덜하고 비타민이 풍부하고 식감까지 재밌는 꽈리고추와 단백질 합성을 돕는 아미노산과 산모에게 필요한 엽산과 철분이 함유된 완두콩을 사용했다.
재료 손질은 간단하다. 꽈리고추를 완두콩 사이즈로 잘라주면 된다. 조리방법도 쉽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잘게 자른 파를 넣어서 파 기름을 먼저 내주었다. 여기에 다진 돼지고기를 넣고 수분이 빠져나갈 때까지 볶은 다음에 간장이나 굴소스를 넣어주었다. 꽈리고추와 완두콩은 금방 익는 재료들이어서 고기를 팬에서 따고 빼주지 않고 빠른 시간에 함께 볶아주었다. 여기에 나는 육개장 끓인다고 만든 고추기름을 아주 살짝 붓고 조리를 끝냈다.
창잉터우를 숟가락으로 퍼서 밥과 함께 곁들여 먹었다. 재료가 모두 같은 크기여서 먹기 편하게 숟가락에 골고루 담겼다. 반해 각 재료의 식감은 다양했다. 꼬들꼬들한 꽈리고추와 육즙이 밴 돼지고기, 고소한 완두콩이 입 안에서 쌀과 함께 씹히며 다채로운 맛이 느껴졌다.
포카와 산책로를 걸으며 <미래의 미라이>의 결말에 대해 생각했다. 스포일러를 할 수 없으니, 쿤이 미래에서 온 미라이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오빠가 됐다’ 고만 밝히자. 포카도 그렇게 누나가 돼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그 지난한 과정일 뿐일까. 영화처럼 미래의 마꼬가 나타나 포카에게 설명해주면 참 좋을 텐데. 엄마 아빠는 언제나 누나를 위해 살았고, 누나를 끔찍이도 사랑했고 누나가 우리 곁을 먼저 떠나고 나서도 단 하루도 누나를 잊지 못했다는 걸 알려주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지금 여기서 내가 포카에게 설명해줄 수밖에.
산책로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나는 포카에게 내 마음을 차분히 설명했다. 보호자로서 여전히 서툴러서 미안하다고 했다.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마꼬에게만 신경 쓰고 예전처럼 못 놀아줘서 미안하다며 포카의 등을 쓸어주었다. 포카는 간식이 먹고 싶은지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고맙다면서 포카에게 간식을 주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다진 고기는 간이 쉽게 배기 때문에 미리 밑간을 하지 않아도 괜찮더라고요. 다만 고기가 채 익지 않았는데 양념을 넣으면 간이 잘 배지 않는다고 해요. 양파를 볶을 때와 마찬가지죠. 양파가 투명해질 즈음에 소금을 넣어야 양파가 간이 배는데요. 이유는 고기나 채소에서 수분이 나오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때 양념을 넣으면 재료가 양념을 흡수하지 못해서 간이 겉돌게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