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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Jul 03. 2020

가난한 그대 나를 골라줘서 고마워요

고등어구이


가계부를 쓰다 보면 한숨이 푹푹 나왔다. 육아휴직 동안 예상 지출과 실제 지출을 정리하여 어느 항목에서 예산이 초과되었는지 파악하였다. 대출에 보험에 각종 공과금은 고정지출이라 손댈 수가 없고, 육아는 아이템 빨이라는 걸 직접 경험하게 된 후론 육아용품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옷이나 미용 소비는 원체 적은 편이었으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졸라맬 수 있는 구석은 식비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가당키나 하는 말인가. 모유 수유하는 산모가 있는 집에서 식비를 아끼는 것이 말이여 방귀여. 한 발 양보해서, 탄수화물과 비타민, 지방은 채소와 과일, 오일로 보충할 수 있지만, 단백질은 매일 콩과 두부, 계란만 먹을 수 없는 일이니 고기를 종종 사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식탁에 양질의 고기를 자주 올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정부의 육아휴직 지원금은 턱 없이 부족했다.

내가 받는 지원금도 살림과 육아를 하기에 모자란데, 아내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나마 고용보험 가입자라 육아휴직을 최대 1년까지 쓸 수 있고 지원금도 매달 나오지만, 고용보험 미가입자 프리랜서인 아내는 정부 지원금이 고작 50만 원으로 3달치밖에 나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내가 임신 중기부터 일을 줄이고 말기에는 일을 할 수 없어 가계 수입이 줄었는데, 출산 후 아내에게 고작 150만 원의 지원금밖에 주지 않았다. 고용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출산지원금 제도가 2020년부터 시행된 거라니, 우리 부부는 운이 좋았다며 춤이라도 춰야 되나.

대체 어떤 합의 끝에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150만 원으로 3달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님 회사원들과 달리 프리랜서들은 3달만 쉬어도 괜찮다는 걸까. 이런 상황이라면 프리랜서 여성은 임신을 하는 순간 저소득층이 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내 한숨 소리에 낡은 우리 집이 꺼질 뻔했나 보다. 아내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민망해서 눈길을 피하자 아내가 말했다.

“내가 너무 많이 먹었나?”

많이 먹어도 모자랄 판에 괜히 복 나가게 한숨을 쉬어서 아내에게 미안했다. 나는 대충 둘러대며 돈은 충분하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아내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그게 잘 못 전달이 된 모양이었다. 안심한 아내는 이내 속상했는지 이렇게 말했다.

“큰 일 난 줄 알았네. 얼마 먹지도 못했는데.”

그 말을 남기고 아내가 떠나자, 나는 다시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산후조리에 좋고 싸고 단백질이 풍부한 식재료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이 고등어다. 생선이 좋은 단백질 공급원인 건 알고 있었으나 나는 지금껏 산모에겐 유선이 막히는 걸 염려하여 지방이 적은 흰 살 생선이 좋다고 알고 있었다. 없는 형편에 갈치, 조기, 도다리처럼 비싼 생선을 식탁에 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값싸고 살집이 두툼하며, 무엇보다 아내가 연어 다음으로 좋아하는 생선인 고등어도 산후조리에 좋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책 <자연주의 산후조리>(시공사, 2015)에 따르면, 일본이나 중국, 북한의 자료에서 산후에 고등어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고등어는 산모에게 꼭 필요한 양질의 고단백질 공급원이며, 오메가 3 지방산이 풍부하여 산후 우울증을 예방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또한 DHA도 많은데,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면 아이의 뇌를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 값싸고 튼실한 자반고등어를 구매한 나는 마치 만선이 귀항하듯 의기양양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저녁으로 고등어를 굽겠다고 하자 아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원체 아내가 베짱이 두둑하고 비위가 강하여 내가 해주는 음식은 웬만하면 잘 먹는 편인데, 생선구이만큼은 힘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생선만 구웠다 하면 온 집안이 비린내로 진동했다. 겉은 탔는데 속이 안 익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때론 집에 연기가 빠지지 않아 흡사 최루탄을 터뜨린 가스실에서 식사를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하는 아내에게 이번엔 다를 거라고 장담했다. 유튜브로 생선을 잘 굽는 비법을 알아냈으니 믿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여러 영상을 통해 내가 알아낸 비법은 다섯 가지였다.




우선 쌀뜨물에 고등어를 15분 동안 담갔다. 쌀뜨물로 생선을 씻으면 생선 특유의 비린내를 없앨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하고 속까지 잘 익히기 위해 고등어에 사선으로 칼집을 내는 것이다.

세 번째 팁은 고등어의 겉껍질의 막을 칼로 살살 긁어 벗겨내는 것이다. 고등어 특유의 비린내는 이 막에서 난다고 한다. 좀 더 깔끔한 맛을 원한다면 번거롭더라도 손질을 해주는 게 좋다. 네 번째는 고등어 표면에 밀가루를 얇게 바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생선 살이 팬 바닥에 붙지 않을뿐더러, 살이 부서지지 않고, 밀가루가 먼저 익으면서 고등어의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지켜준다고 한다.

이제 마지막이다. 내가 늘 망했던 것은 마지막인 굽기에서였다. 나는 스테이크처럼 예열을 충분히 한 팬에 기름을 두르고 겉면을 센 불에서 굽고 중불로 안을 익히려고 했는데, 생선은 이러면 탄다. 더 구웠다가는 숯을 먹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굽기를 망설이면 안이 익지 않는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아내가 젓가락으로 생선 살을 집었는데 물이 줄줄줄 나와서 둘 다 울기 직전의 표정을 지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선은 부디 중불에서 굽자. 중불에서 겉면을 노릇하게 굽고 안쪽을 익히는 건 중불 혹은 중약불이면 충분하다. 말로 설명하니 너무 뻔해서 허무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숱하게 태워먹었던 생선들을 생각하면 내겐 천금 같은 지혜다.


유튜버들의 지혜 덕분에 나는 마침내 고등어를 기막히게 구웠다. 고등어는 정말로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밀가루 옷 때문인지 겉은 바삭했고 속까지 잘 익었을 뿐 아니라 육즙 때문에 생선 살이 촉촉했다. 고등어 살을 크게 발라 아내의 밥그릇에 무심하게 얹어줬다. 이젠 얼마 먹지 못했다고 속상해하지 않겠지. 불현듯 언젠가 아내와 콘서트에 갔었던 가수 루시드 폴의 <고등어>란 노래가 떠올랐다. 루시드 폴은 어떻게 그런 가사를 쓸 수 있었을까. 그도 소중한 누군가에게 고등어를 구워준 적이 있었던 걸까.


“몇 만 원이 넘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 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온 수많은 가족들의 가족 밥상.

나를 고를 때는 내 눈을 바라봐 줘요.
나는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나를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고등어는 비늘 부분에 기름이 많기 때문에 팬에 구울 때 비늘부터 먼저 구워야 한대요. 고등어에서도 기름이 나오기 때문에 오일을 조금 덜 쓸 수 있겠어요.


-저 같은 경우는 조리가 끝난 팬에 레몬즙을 한 큰 술 넣어서 생선에 골고루 끼얹어 줬어요. 레몬즙이 생선 비린내를 잡아주는데 효과가 좋더라고요.


-고등어에 포함된 오메가 3은 산후 우울증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영양소인데요. 집에서 고등어를 굽는 게 힘드신 분들은 가쓰오부시를 드시는 게 어떨까 싶어요. 일본에서 오메가 3가 풍부한 가다랑어를 이용해 만든 가쓰오부시로 많이 먹는데요. 멸치육수가 필요한 요리에 함께 사용한다면 감칠맛도 살고 영양도 좋아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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