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들이 나를 여행자로 만들었나 봐요
그때는 몰랐어요. 그게 여행이란 것도, 여행이 주는 황홀함이란 것도요. 우리는 여행을 꿈꿔요.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이 뒤섞인 쾌락에 어쩔 줄 몰라하죠. 나는 언제부터 여행을 좋아했을까? 돌이켜 보니, 비행기를 타기 한참 전부터 저의 여행은 시작됐어요.
1. 여행이 없는 서글픔을 동시로 썼어요
방학이 되면 남들처럼 바다로, 산으로 놀러 갈 줄 알았어요. 미술시간 스케치북엔 그런 그림만 그렸으니까요. 원두막에 수박, 바다와 튜브. 이런 그림은 허황된 꿈이라고 왜 안 알려 준 건가요? 우유배달 아버지는 쉬실 수가 없었죠. 게다가 구멍가게까지 같이 했으니까요. 그깟 휴가 때문에 가게 문을 닫으라고요? 방학 때 가족이 나들이를 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피서 가는 가족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지금처럼 차가 많은 시절이 아니어서, 바리바리 싸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었죠. 저는 버스정류장에 쭈그려 앉아서 시를 써요. 세상은 행복한데, 나는 이 여름의 미운 오리 새끼. 그 나이 감성 최대치로 궁상을 떨며 써내려 갔죠. 기구한 사람일수록 시를 써야 해.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시인의 정의까지 내려 가면서요. 너무 서럽고, 분해서 시를 써야 했어요. 나만 빼고 다 행복한 세상, 시가 나를 위로했어요. 조금만 더 궁상이 지속됐다면, 천재 시인 나왔겠죠. 그러다가 말았어요. 시인의 미덕인 지구력이 없었던 거죠.
2.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던 화양계곡
서울우유 조합원(우유 배달 아저씨들이 갹출을 해서 대리점을 차렸어요)이 야유회를 간다는 거예요. 부곡 하와이 간다더니, 화양계곡으로 장소가 바뀌었죠.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울었나 몰라요. 부곡 하와이를 너무너무 가보고 싶었거든요. 80년대 캐러비안 베이였어요. 아이들 심정은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는 어른들의 결정이었죠. 하지만 즐거운 충격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관광버스란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우리만을 위해 대기하고, 이동하는 버스라는 게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러웠나 몰라요. 콜라, 사이다가 박스 째로 옮겨지고, 거대한 포대자루 상추와 고기들이 짐칸에 실렸죠. 우이동 계곡만 알았던 저에게 충청도 화양계곡은 신세계였어요.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깨끗한 물이 흐르더군요. 계곡엔 피라미와 송사리만 사는 줄 알았던 저는, 그렇게 큼직한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아요. 너무 흥분했는지 수영하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날이기도 했어요. 이전에는 없었던 경험들이 한 아이를 들었다 놨던 날이었죠. 지금도 화양계곡은 그렇게 물이 깨끗할까요?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펄떡대고 있을까요? 한국에 가면 다시 한번 가봐야겠어요.
3. 한 여름의 수영장, 그윽한 락스 냄새
여름방학 최고의 날은 수영장 가는 날이었어요. 우이동 그린파크, 삼원 수영장, 정릉 스타 풀장, 덕성여대 수영장을 주로 갔어요. 형편상 자주 갈 수는 없고, 방학 내내 두세 번 정도 갈 수 있었죠. 형과 나, 그리고 형 친구들이 부모님 없이 시내버스 타고 수영장으로 향했어요. 튜브, 수영복, 물안경을 챙길 때부터 발가락이 움찔댈 정도로 좋았어요. 개장하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요. 하늘색으로 일렁이는 수영장이 천국처럼 말끔해요. 얼마나 들이부었는지, 락스 냄새가 코끝을 강타하죠. 그 향이 또 그렇게나 좋더라고요. 천국이라면 세균 걱정 없는 락스 냄새가 당연히 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막상 수영이 시작되면,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더라고요. 사람이 좀 많아야죠. 수영장에 오줌 누는 놈들도 엄청 많았어요. 저도 한두 번 범죄에 가담했고요. 배도 금방 꺼지는데, 먹을 게 늘 부족했어요. 배고프고, 피곤하고, 찝찝한 놀이였죠. 그래도 문을 열자마자 훅 들어오는 파란색의 일렁임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어요. 시각에도 마치 냄새가 존재하는 것처럼, 상쾌한 향이 파란색에서 스며 나왔죠. 가난한 구멍가게 둘째 아들에겐, 말도 안 되게 화려하고, 말끔한 세상이 수영장이었어요.
4. 나주 기차역에서 보았던 가득하고 찬란한 별들
어머니는 저만 데리고 전라남도 나주로 향하는 기차를 타셨죠. 새벽녘에 도착했어요. 비몽사몽 택시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요. 전라남도 나주군 다시면 작은 증문리. 어머니의 고향이죠. 별이 하늘에 쌀알처럼 촘촘촘 박혀 있더군요. 서울에서는 띄엄띄엄 흐릿한 별 몇 개가 다였는데요. 쏟아지는 별들의 호위를 받으며, 시골 깊숙이 들어가요. 막내 이모가 잠이 덜 깬 채 일어나요. 방 옆에 소가 큰 눈을 굴리고 있더군요. 소랑 사람이 같이 살다니. 부엌 짚더미를 쏜살같이 달리는 쥐새끼들, 미끄러워서 단 1초도 서 있을 수 없었던 빨래터, 나무판자 두 개만 달랑 있는 아슬아슬 변소가 그렇게도 충격적일 수가 없었어요. 막내 이모가 저를 태우고 빙글빙글 돌았던 국민학교 운동장은 깨끗했고, 마침 가을이라 하늘은 더, 더 깨끗했어요. 감이 어디서나 빨갛게 익어가는 작은 마을이었어요.
5. 앞산은 우리에겐 밀림이고, 정글이었죠
우리에게 앞산은 번동 주변이었어요. 서울이지만 시골 분위기가 났어요. 산딸기도, 머루도 따먹을 수 있었죠. 걸어서 갈 수 있는 시골이라, 심심하면 잠자리 채 들고 번동으로 향했죠. 야구장으로도 인기였어요. 골목에서 발야구나 야구를 하면, 늘 어른들이 화를 내며 쫓아냈죠. 번동 가기 전 공터는 야구공을 때리고, 던져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어요. 평평한 땅과 숲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곳이었죠. 겨울에 개울을 건너다가 미끄려져서, 옷이 다 젖어 버려요. 얼어 죽을 것만 같더라고요. 마침 큰집이 가까이 있었어요. 할머니, 큰 어머니를 늘 무서워했는데, 다급해지니까 문을 두드리게 되더라고요. 갑자기 찾아온 손자가, 조카가 애틋하셨는지, 늘 무섭던 할머니도, 큰 어머니도 다정히 옷을 벗기고, 말려 주시는 거예요. 갑자기 찾아오면 손님이 되는구나. 반가운 손님이 되려면,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막연하게 여행자의 가치를 깨우쳤던 날이었어요.
6. 강남이라는 신세계의 충격
여덟 살 전후였을 거예요. 어머니 친구 중 한 분이 강남으로 입성하셨죠. 신사동 쪽이었는데, 집 자체가 딱히 으리으리하지는 않았어요. 처음으로 비디오가 있는 집을 방문한 날이기도 했죠. 사실 비디오를 보려고, 그 집에 간 거였어요. 비디오는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가요? 원하는 영화를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기계라뇨? 극장도, TV도 해내지 못한 기적을 소니가 해냈더라고요. 중국 무술 영화를 침을 꿀꺽 삼켜가면서 봤어요. 밥을 먹고 영동백화점이란 곳을 구경 갔어요. 영동백화점엔 전망 엘리베이터가 있더군요. 그냥 엘리베이터도 신기하고, 재미나 죽겠는데 이건 바깥세상이 훤히 보이는 투명 문 엘리베이터인 거예요. 미도파 백화점과 신세계 백화점이 이뤄내지 못한 업적을 이룬 위대한 백화점이었죠. 강남은 이렇게나 신세계구나. 가도 가도 산 하나 없는 평지뿐인 세상은 너무 밋밋한가 싶다가도, 저 집집마다 비디오를 숨겨놨다 생각하니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겨울에도 집이 너무 더워서 반팔, 반바지로 사는 아파트란 게 있다는데, 그냥 흘려 들었어요.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죠.
7. 최초의 직관, MBC 명랑 운동회
'MBC 명랑운동회'는 일요일 아침 최고의 인기 버라이어티쇼였죠. 장충체육관에서 녹화를 하는데, 방청권이 있어야만 입장할 수 있었어요. 부지런한 어머니가 입장권을 구해 오셨어요. 최고의 MC 변웅전 아나운서와 연예인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추첨으로 금성 칼라 TV를 주는 행사가 최고의 이벤트였죠. 연예인들은 저 멀리 코딱지만 해서 뭐가 보여야 말이죠. 경기 중간, 중간에 한참을 쉬더라고요. 좀이 쑤셔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컬러 TV에 대한 희망으로 앉아있을 만했어요. 당연히 당첨은 안 됐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점처럼 작은 사람이 '당처어엄'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는 모습이 정말 멋졌어요. 중학교 때는 '화요일에 만나요'를 직관하려고 반나절을 기다렸다는 거 아닙니까? 입장이 시작되니까 양아치 같은 것들이 뒤에서 갑자기 미는 거예요. 사람들 쓰러지고, 신발 벗겨지고, 울부짖고. 그런 아비규환이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맨 앞자리에서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과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신곡 발표를 최초로 감상해요. 도시 아이들의 '달빛 창가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날이었죠. 조연출인지 FD인지가 나한테 와서, 이상한 거 던지면 죽는다. 이렇게 위협을 하더라고요. 이렇게 착하게 생긴 아이에게, 왜 눈을 부라리며 협박을 하냐고요? 얌전하게 보느라, 박수도 마음껏 못 친 날이었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요. 저는 쓰고 싶은 걸 쓰면서 살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