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잔인한 뉴스가 진실이 아닐까요? 실체가 아닐까요?
태국에서 TV를 마주하다 보면, 내가 사는 세상이 의심스러워요.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일어나니까요. 오늘은 전신주에서 한 남자가 활활 타고 있어요. 옆에서는 한 백인 남자가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요. 처음엔 그렇게 타고 있는 존재가 사람일 거란 생각을 못했어요. 아닐 거야. 아니어야 돼. 불에 타는 남자는 전선을 수리 중이었어요. 숙련된 전문가였던 거죠. 합선이 돼서, 불이 붙었나 봐요. 저는 전기가 어떻게 합선이 되는지, 합선이 되면 불이 왜 나는 건지 잘 몰라요. 그래서 이런 상황이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전신주에서 떨어지기 않기 위해 꼭꼭 묶어 둔 안전벨트 때문에 남자는 꼼짝도 못 해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전벨트를 풀어요. 타들어가는 손가락으로요. 불속에 완전히 갇혀서요. 그리고 강물 속으로 떨어져요. 사람들이 재처럼 까매진 남자를 물가로 끌고 나와요. 응급실로 실려 갔다. 거기까지가 제가 본 뉴스의 전부예요.
자신을 괴롭히던 전 남자 친구에게, 현 남자 친구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요. 여자 친구를 위해 복수를 한 거죠. 그렇게 남자는 불에 활활 타고, 이내 불은 꺼져요. 화상을 입고 걸어가는 남자를 카메라가 쫓아요. 유난히 하얀 흰자를 분명히 껌뻑이며, 천천히 걸어요. 전 여자 친구를 괴롭히고, 성폭행을 일삼던 남자는 갑자기 숯검정이 되어서는 앞으로, 앞으로 걷기만 해요. 이건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에요.
방송에서 굳이 이런 것까지 보여줘야 할까? 방송국에선 이런저런 핑계를 대겠지만, 결국 화제성이겠죠. 사람들이 채널을 어떻게 돌릴 수가 있겠어요? 끔찍하지만,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알고 싶기도 하니까요.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땐, 이미 늦었어요. 어쩔 수 없이 시청자는 목격자가 되어 버려요. 우리나라라고 이런 일들이 안 일어나겠어요? 더 끔찍한 일들도 적당히 포장해서, 적정 수준으로 보도하는 거겠죠. 적당한 평화 속에 산다고 오해하는 이유죠.
노동자들의 죽음을 생각해요. 쇳물에 추락해서 사망하고, 프레스 기계에 깔려서 사망해요. 파쇄기에 끼어서 사망하고, 어육 기계에 빨려 들어가서 사망해요. 하지만 '산업재해'라는 말끔한 단어 뒤로 숨어서, 우리는 그런 뉴스에 오래 머물지 않아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요. 무사한 세상은 존재한 적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현장을 태국 뉴스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면, 우린 더 이상 그런가 보다 할 수 없을 거예요. 징글징글한 세상을, 참 쉽게 인정하고 살았구나. 두렵고, 화가 나서 잠을 설칠 거예요. 그런데, 어쩌나요? 우린 그런 잔인한 세상에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하하호호 살고 있는 걸요.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가 합병하면서, 수조 원이 왔다 갔다 했다면서요?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그렇게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나요? 늘 하던 배달을 스마트폰으로 연결해 주면, 미래의 첨단 산업이 되더군요. 그런데 그거 다 결국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거잖아요. 집에서 안락하게 치킨 먹으려고, 누군가는 폭우가 쏟아지는 빗길을 쏜살같이 달려야 하는 거잖아요. 사람이 죽어 나가도, 거스를 수 없으면 닥치고 살아야 하는 게 순리라면서요? 왜 이런 일들이, 다른 문제보다 더 후순위로 고민되고 있는 걸까요? 코로나까지 발발한 마당에,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요? 그래서 배달이 없어져야 속이 시원하겠냐고요?
보통의 인간은 연민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때론 무심해요. 그건 어쩌면 실체를 볼 기회가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세상의 비극을 희미하게 덧칠해서 보여주는 게, 어쩌면 속임수죠.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데, 그런 세상인 줄 알고 살라는 사기술인 거죠. 잔인한 뉴스를 보면서, 밥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실망한 날이었어요. 이런 글을 끄적이고는, 저 역시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켜겠죠. 그걸로 먹고사는, 사고보다 굶어 죽는 게 무서운 사람들에게 저의 글은 시비에 불과하니까요. 이왕 시키는 주문, 천천히 오라고 하세요. 조금 늦어도 된다고 하세요. 진심으로 감사하세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열심히 실어 나르는 분들의 안녕이 걱정되는 하루입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고민을 하지만, 오래 하지는 않아요. 나와야 할 글이 나오는 거라 믿으니까요. 저는 가벼워진 채, 나와야 할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더 잘 쓰는 사람 말고, 더 가볍고, 투명한 사람. 그게 저의 작은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