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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했던 도시들

여행 로또에 당첨된 순간

by 박민우

어떤 곳은 머물수록 좋아지기도 하고, 어떤 곳은 처음부터 여기다 싶죠. 어느 정도는 예측을 하고 간다고 해도,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정밀하겠어요? 의외의 실물에 당황하고, 놀라움을 소화하기 위해 생각도, 말도 멈추게 되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첫날부터였던 도시들을 떠올려 봤어요.


1. 내가 꿈꾸는 유럽이 여기야,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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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얼마나 했느냐도 중요할 거예요. 런던은 저에게 첫 유럽이었어요. 촌뜨기에게 처음 유럽이 얼마나 근사해 보였겠어요? 히드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공항버스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고요. 공원 잔디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짙푸를까요? 꾹꾹 짜면, 녹즙이 나올 것처럼 진한 잔디가 지천에 널렸더군요. 지상낙원이 있다면 이런 곳일 거야. 좀 충격적이더군요. 지금도 유럽을 샅샅이 아는 건 아니지만, 런던은 공원이 정말 정말 잘 되어 있는 도시예요. 하나 같이 규모가 크고, 예쁘기까지 하죠. 런던은 공원만 다녀도 본전 뽑는다고 생각해요. 날씨 좋은 날 돗자리 펴고, 햄스테드 히스 공원에서 책 딱 열 페이지만 읽어 보세요. 런던이 인생 여행지가 될 거예요. 장난감 같은 2층 버스가 좁은 도로를 뒤뚱뒤뚱 다니는 모습도, 이탈리아 사람 못지않은 패션 감각도 런던의 관광 포인트죠. 런던의 맛없는 현지 음식을 먹기 전까지는 그냥 최고였습니다.


2. 나 여기서 살면 안 될까?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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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는 좀 실망스럽더라고요. 미국에서도 제일 잘 사는 도시 중 하나라는데 별 거 없구먼. 이게 전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죠. 일단 숙소에 짐을 놔두고, 천천히 골목 탐색에 들어가요. 샌프란시스코는 거대한 산동네예요. 경사가 완만한 언덕에 집들을 가로, 세로로 가지런히 지어놨죠. 일단은 언덕을 올라요.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면, 다시 내리막길이 나와요. 그 내리막길의 끝에서는 바다가 일렁이고요. 마침 전차가 제 옆을 지나가요. 샌프란시스코는 바람조차도 1등급이에요. 달달하고, 친절해요. 우호적인 공기에 휩싸여서는, 천천히 내리막길을 걸어요. 내려갈수록 바다는 가까워지고, 몽글몽글 피어나는 간지러운 감정에 겨워해요. 아, 살고 싶다. 이런 곳에서 늙어 죽고 싶다. 지구의 축복을 독점한, 욕심 많은 부촌처럼 보였어요. 도시 전체가요. 사람들도 순하고, 친절했어요.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을 꼭 다시 밟아 봐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샌프란시스코 때문이에요. 재벌이 된다면 1년에 한 달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머물고 싶어요.


3. 샌프란시스코보다 더 좋잖아, 소살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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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자전거를 타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의 작은 도시예요. 샌프란시스코에 가신다면, 소살리토는 꼭, 꼭 가보셔야 해요. 그 흔한 노숙자도 소살리토에는 거의 없더군요. 부촌 위의 부촌, 진짜 부자들만 숨어서 자신들의 특권을 누리는 느낌이었어요. 고급 요트들이 빼곡한 이 도시는, 미국인들이 꿈꾸는 은퇴 장소처럼 보이더라고요. 안전하고, 깨끗하고, 더 보탤 것 없이 아름다운 도시였죠. 너무 아름다우면 눈물이 찔끔 나잖아요. 소살리토에서 그런 경험을 했네요. 좀 웃긴데, 저는 진짜 좋은 곳을 보면 다짐부터 해요. 착하게 살아야지. 그래야 이런 곳에 또 올 수 있는 거야. 소살리토에 올 수 있었으니, 못 살지는 않았나 봐요. 미국에는 소살리토 같은 아름다운 도시가 몇 개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미국이 더 궁금해져요.


4. 멕시코는 예쁜 도시들의 끝판왕, 그중에서도 탁스코(Tax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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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과나후아토(Guanajuato)예요. 식민풍 도시 중에서도, 저에겐 가장 아름다운 도시죠. 자주 언급을 했기 때문에 탁스코를 이번엔 골라 봤어요. 멕시코의 도시들은 주로 고지대에 있어요. 산을 질서 없이 각각의 집들이 가득 채우고 있죠. 화려하고 밝은 색감의 집들이 산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중앙에는 우뚝 성당이 있고요. 골목을 다니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마을 풍경이 압도적이에요. 은이 유명한 곳이기도 해요. 북미 최초의 은광 도시로 영화를 누렸던 곳이죠. 우둘두둘 자갈이 박힌 길로, 복고풍의 하얀색 폭스바겐들이 딱정벌레처럼 기어 다녀요. 이곳에서 주문형 아이스바도 꼭 드셔 보셔야 해요. 각종 견과류, 초콜릿 등을 바로바로 코팅해서 팔아요. 이탈리아 젤라토보다 개인적으로, 멕시코의 아이스크림을 더 맛나게 먹었네요. 멕시코는 보석 같은 나라예요. 멕시코를 꿈꾸세요. 언젠가는 꼭 가보세요.


5. 이름도 몰랐던 도시, 그래서 더 황홀! 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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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라는 나라를 아시나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코카서스라는 곳이 있어요. 이곳의 세 나라를 코카서스 3국이라고 불러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렇게 세 나라요. 아르메니아를 가장 나중에 갔어요. 조지아의 수도는 트빌리시인데, 예쁜 곳은 예쁘고, 낙후된 곳은 굉장히 낙후됐어요. 신호등보다는 지하 육교를 주로 이용해요. 상당히 음침하고 낡아서 도시 이미지까지 갉아먹더라고요. 돈이 없어서, 도시 정비가 덜 된 도시로 보였어요.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스럽더라고요. 아르메니아는 조지아에 비해서 덜 알려진 나라예요. 기대 자체를 안 했어요. 더 인기가 없는 나라니까, 조지아보다도 못할 거라 지레짐작했죠. 막상 가보니 너무나 멀쩡한 거예요. 인도도 널찍널찍하고, 길 건너기도 쉽고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당연히 떨어지지만, 조지아에서 넘어가니까 이런 선진국이 또 없더군요. 매일 공화국 광장에서 분수쇼를 해요. 공짜로 보기 미안한 감동적인 공연이었어요. 사람들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친절해요. 조지아는 아르메니아보다 딱 세 배 정도 덜 친절하고요. 아르메니아에 관심 좀 많이 가져 주세요. 이렇게 좋은 나라가, 너무 안 알려져서 굳이 강조합니다. 그립고, 그리운 나라예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오늘은 몸살기가 좀 있네요. 그래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아프면 아픈 대로, 멀쩡하면 멀쩡한 대로 이 순간이 참 소중해요. 변태 같지만, 몸살을 좋아해요. 끙끙 앓으면서 누워 있으면, 더 안락한 느낌이 들거든요. 저 변태 맞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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