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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곳을 싫어했던 이유는 뭘까?

내가 문제였을 거예요. 장소는 죄가 없어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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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15년 전 우유니 사진


몸살로 어제, 오늘 방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어요. 그래도 어제보다는 훨씬 괜찮아졌네요. 내일이면 더 괜찮아져 있겠죠? 그런 희망이 없다면, 병은 훨씬 더 괴로워져요. 아프면 매사에 부정적이게 돼요. 잘 먹던 음식들도 역겨워요. 불안한 내 삶에 화도 나고요. 몸이 조금씩 괜찮아지면서 그런 감정도 자연스럽게 잦아들어요. 우리의 감정이란 게 이렇게나 단순해요. 여행 중에 지긋지긋했던 장소들은, 그 장소가 이유가 아닐지도 몰라요. 내가 그 순간, 즐길 기분이 아니었던 거죠. 캠핑이 왜 좋나요? 잠자리 불편하지 않나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마음 편히 쓸 수 없고요. 그래도 좋다고요? 쳇바퀴 돌듯 회사에서, 대중교통에서, 학교에서 시달렸다고요? 새로운 공간에서 밥을 해 먹고, 잠을 자는 게 힐링이라고요? 새소리, 바람소리를 가까이 듣는 게 아파트에선 가능이나 하겠냐고요? 하지만 배탈이 나도 여전히 힐링일까요? 십 분마다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는데, 잠은 또 텐트에서 자야 해요. 그래도 계속 캠핑하고 싶을까요? 얼른 집으로 가자고 조를 걸요? 그냥 다 귀찮고, 지긋지긋할 테니까요.


내가 싫어했거나, 감흥이 없었던 곳들도 그런 이유였을 거예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왜 그렇게 불만이 많았는지 이제는 알겠어요. 역류성 식도염으로 밤마다 식은땀을 흘렸어요. 먹고 싶은 게 눈에 보이면 뭐해요? 먹으면 또 탈이 날 텐데요. 먹는 즐거움이 제 여행 지분의 절반 이상인데, 그 즐거움이 날아갔어요. 그러니 다 싫은 거죠. 폐허처럼 흉측한 골목도, 건강했다면 낭만적인 옛 골목으로 보였을 거예요. 불친절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치를 떨지는 않았을 거예요. 원래 속정 깊은 사람이 무뚝뚝한 법이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웃으며 돌아설 수 있었을 거예요.


우유니의 소금 사막에서도 저는 인상만 쓰고 다녔어요. 잠자리가 불편했어요. 여행사에서 재워 주는 숙소가 말도 못 하게 더러웠거든요. 매트리스나, 베개는 건드리기만 하면 먼지가 분무기 물처럼 뿜어져 나왔어요. 밤새 콜록이고, 물도 안 내려가는 차가운 변기에 쭈그려 앉아야 했죠. 그래서 소금 사막은 저에게 춥고, 더러운 기억이 먼저 찾아와요. 천지가 모두 하얀, 듣도 보도 못한 시각적 충격에도 차분한 태도를 유지해요. 남미에서 소금 사막은 마추픽추, 이과수 폭포와 함께 꼭 봐야 하는 3대 명소죠. 그걸 어떻게든 봤다는 후련함이 더 컸어요. 저는 그때 2박 3일 투어를 신청했어요. 캐나다 커플, 뉴질랜드 커플은 3박 4일이었고요. 운전사가 저만 되돌려 보내야 하는데, 그게 귀찮았나 봐요. 그냥 하루 더 있으래요. 땡잡았다고 생각해야 하잖아요. 소금사막은 소금 사막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독특한 자연환경이 빚은 다양한 색의 호수들, 암석들, 동물들을 볼 수 있어요. 1초도 고민 안 하고, 숙소로 보내 달라고 했어요. 재밌는 건 캐나다 커플도, 뉴질랜드 커플도 그만 보겠대요. 제발 이 여행을 끝내 달라고 빌다시피 하더라고요. 다들 고산병으로 힘들어했거든요. 소금 사막이 해발고도 3,600미터예요. 토하고, 머리는 지끈지끈하고, 숨은 잘 안 쉬어져요. 아픈데 장사 없다니까요. 심지어 뉴질랜드 커플은 그날로 찢어졌어요. 사연이야 모르지만, 숙소를 따로 잡는 게 어디 작은 싸움인가요? 눈치가 보여서 이유는 묻지 못하겠더라고요. 숙소가 조금만 쾌적했어도, 다들 몸만 멀쩡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게도 좀 미안해요.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외계 행성 같은 곳이죠. 아타카마 사막을 인생 여행지로 꼽는 사람도 많아요. 건조한 땅이 빚어내는 반복된 아름다움이 아타카마 사막의 매력이죠. 저는 그때 목에서 피까지 나왔어요. 며칠만 더 있다간 죽을 것 같더군요. 그 건조함이, 저에겐 살인 무기였어요. 훨씬 더 건강하게, 아무 문제없이 그곳을 찾았던 사람은 저를 보면서 어이없어할 거예요. 아니, 진짜 아타카마 사막이 별로라고요? 아타카마 사막 본 건 맞아요?


그럼 저는 단호하게 대답해야죠. 저는 여행 제대로 하는 사람 아니에요. 갈대처럼 흔들리고, 흔들리는 대로 반응하는 세상 가장 가벼운 인간입니다. 그러니 제가 좋다고 해도, 싫다고 해도 한쪽 귀로 흘려들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글이요? 한 가벼운 인간의 취향을, 밤의 고요함에 섞어서 흘려보내는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알고는 계시라고요. 저는 이제 저녁밥을 좀 먹어야겠어요. 내일 쌩쌩해지려면, 뭐라도 좀 먹어둬야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씁니다. 어떤 게 행복인지는 잘 모르지만, 몰입의 시간이 좋은 시간인 것 같아서요. 몰입하는 즐거움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저의 작은 쾌락에 힘을 보태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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