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채식의 생활화
제가 요즘 채식을 하고 있어요. 한 번 해볼까 정도예요. 삶이 길지 않은데, 이런 경험도 해보면 좋잖아요. 하다가 안 맞으면, 그때 얼마든지 중단하면 되는 거니까요.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예요. 이렇게 채식 반찬 가게가 방콕에 많은 줄요. 몰랐다기보다는, 그래서 뭐? 정보를 의미 있게 해독하려 들지 않았겠죠. 시장에 가면 노란색으로 '쩨(เจ)'라고 쓰여있는 가게들이 꼭 있어요. 채식 반찬만 파는 곳이에요. 그런 반찬 가게가 시장마다 꼭 있더라고요. 장사도 얼마나 잘 되는지 몰라요. 가면 수상한 메뉴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누가 봐도 삼겹살 튀김이거든요. 삼겹살이 아니라 채식 고기로 만든 거예요. 보기에만 그럴듯한 게 아니에요. 제가 몇 달 전에 스타벅스에서 인조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먹어 봤어요. 진짜 신기하더라고요. 고기 비린내가 확 나는 거예요. 맛있다는 생각까지는 안 들고, 좀 부정적으로 완벽한 고기였어요. 그런데 사진 속 저 삼겹살 튀김은 누가 말해 주지 않으면, 그냥 삼겹살이에요. 훨씬 더 그럴듯하더라고요. 미국에서 인조고기를 만드는 비욘드 미트라는 회사가, 제2의 테슬라다, 애플이다. 대접 좀 받는 모양인데, 차라리 태국에서 인조고기 기술을 배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니까요. 태국에선 채식주의자로 살아도, 평생 삼겹살을 드실 수 있답니다.
채식 어묵과 생선이에요. 왼쪽 아래쪽이 생선이에요. 등 푸른 생선을 조각내서 튀긴 거죠. 아, 물론 진짜 생선은 아니고요. 나머지들은 어묵이에요. 저는 조각 생선 말고, 어묵만 먹어 봤어요. 깜짝 놀랐어요. 일반 어묵보다 더 맛있어서요. 굳이 더 비싼 생선살 안 써도 되겠던데요? 이런 메뉴들이 재래시장에서 오래전부터 팔리고 있었다는 게 놀랍더라고요. 그만큼 태국 사람들의 채식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태국의 채식 문화는 중국에서 유래했어요. 낀쩨(กินเจ)라는 축제가 있어요. 축제의 유래는 이래요. 태국 남부 지방에 카투라는 광산촌이 있어요. 많은 중국인들이 그곳 광산에서 일을 했어요. 그들을 응원하려고 경극 단원들이 중국에서 왔는데 모두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한 거예요. 정체불명의 전염병은 채식을 하면서 씻은 듯이 낫게 돼요. 이후 푸껫을 중심으로 채식을 먹는 축제가 시작돼요. 악귀를 쫓고 병을 막는 축제는 태국 전역으로 퍼지게 되죠. 음력 9월 1일부터 9일까지, 총 구일 동안 채식 가게들은 역대급 매출을 올려요. 평소보다 가격도 비싸져요. 최소 25%에서 50%까지 올려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가니까요. 이 시기엔 마늘이나 양파처럼 향이 강한 채소도 금해요.
동네 주변엔 채식 식당이 얼마나 있으려나? 구글맵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상당히 많더라고요. 그중 평이 좋은 The vegetarian cottage란 식당을 가봤어요. 처음엔 식당 잘못 온 줄 알았어요. 메뉴판이 온통 고기인 거예요. 돼지고기, 소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스테이크 등 없는 게 없더군요. 냉장고에는 햄과 스테이크를 가득 쌓아놓고 팔고요. 그게 다 콩이나 버섯으로 만든 거예요. 사진 속 저건 정체가 뭘까요? 무려 게살 튀김이에요. 해산물까지 다 있어요. 이 식당은 30년이나 됐더군요. 위치도 너무 외져서, 일부러 찾아가는 손님만 있는데도 30년 넘게 장사 잘하고 있어요.
태국은 스님도 고기를 먹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고 있어요. 사람 참 간사한 게, 그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채식이 지금은 너무나 존재감이 커져 버렸어요. 채식이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우리나라처럼 변화에 과감한 나라도 없죠. 동물 사랑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예전엔 먹다 남은 밥에 찌개 국물 섞어 주면 그게 개밥이었어요. 개를 발로 뻥뻥 걷어 차는 사람들, 자루에 넣고 산 개를 야구 방망이로 내려치는 사람들, 큰 양은 통에 잡은 개를 넣고 끓이는 우이동 계곡. 어릴 때 제가 목격했던 모습들과, 지금의 동물 사랑은 완벽히 다른 세상이에요. 그런 변화의 속도로 채식은 폭발할 거라 확신해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채식에 눈을 돌릴 테니까요. 일본이 이미 채식 주의자가 천만 명이 넘었으니, 우리도 400만 명 이상의 채식주의자들이 생겨날 거라고 봐요. 그 엄청난 시장이 이제 꿈틀대고 있어요. 그 기회를 먼저 잡는 사람은 큰돈을 버실 겁니다. 저는 뭐 힌트만 드리겠습니다. 태국 채식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돈벌이 이야기로 끝을 맺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사람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해요. 무의미한 존재로 산다는 건, 견딜 수 없이 비참하니까요. 그래서 씁니다. 의미 있는 존재이고 싶어서요. 그게 부질없는 욕망일지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