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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배낭 여행자가 보는 한국의 매력

이렇게콘텐츠가풍부한 나라가 되다뇨? 그저 놀랍습니다

by 박민우

우리나라가 매력적인가? 각성하기란 쉽지 않아요. 내 몸의 체취를 아는 게 힘든 것처럼요. 늘 보고 자란 풍경을 객관적으로 보기란 쉽지 않죠. 다른 나라를 오래 떠돌다 보니까, 우리나라가 저에겐 새로운 여행지로 보여요.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는 볼 게 있나?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서울은 회색빛 죽은 도시 같고, 시골은 헐벗은, 굶주림만 겨우 면한 빈민촌처럼 보였으니까요. 지금의 한국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어요. 애국심 빼고 봐도요. 그렇다고 칭찬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어디에나 있는 벽화 마을, 포토존, 드라마 촬영지 등에서 인공적인 향이 많이 나서요. 너무 노골적으로 기획된 포장 상품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 것도 차차 개선되겠죠. 자신들만의 장점을 잘 알게 될수록, 차별화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우리나라의 관광 경쟁력은 뭘까요?


1. 서울의 거대한 한강은 독보적


한강은 독보적이에요. 이렇게 대도시를 가르는 광활한 강은 흔치 않아요. 게다가 한강 주위를 너무 잘 정비해 놨어요. 날씨 좋은 날 한강 공원에 앉아 있으면, 궁극의 선진국에 온 느낌이에요. 세빛 둥둥섬도 예산 낭비로 욕 좀 먹은 걸로 아는데, 저 같은 촌놈에겐 독특하고, 멋져 보이긴 하더군요. 게다가 편의점과 배달도 잘 되어 있어서, 식도락 체험을 제대로 할 수 있죠. 강바람 맞으면서, 시원한 맥주에 갓 배달된 치킨을 뜯는 호사는 오직 한강에서만 가능합니다. 완전 신세계 체험인 거죠. 한강에서 반나절을 뭉개고 있어도 시간 낭비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요.


2. 경복궁과 광화문, 그리고 빌딩 숲. 이 극단적인 대조법


빌딩이 화려한 대도시야 흔한데, 고궁과 빌딩이 공존하는 도시는 흔치 않아요. 조선의 왕궁 경복궁이 빌딩 숲과 붙어 있다시피 하죠. 경복궁뿐인가요? 창덕궁 비원, 동대문, 숭례문도 빌딩 숲에 둘러싸여 있어요. 여행자 입장에선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이죠. 미래 도시처럼 화려하고, 편리한데 사이사이 우아한 옛 건물들이 시선을 사로잡아요. 서울이란 도시는 신비로운 도시예요. 과거와 미래,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니까요.


3. 정말 멋진 산들이 전국을 가득 채운 나라


우리나라 산은 다른 나라 산과 굳이 비교하면 웅장하지는 않아요. 더 크지 않다는 거지, 막상 그곳에서 둘러싸이게 되면, 충분히 감동적이죠. 서울에서 쉽게 갈 수 있는 북한산이나 도봉산이 결코 시시한 산들이 아니에요. 바위산이 숲을 뚫고 나온 듯한 기묘한 형상이 환상적이죠. 도시 주변의 산들은 높지 않아서, 충동적으로 올라도 쉽게 정상까지 도달할 수 있어요.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죠. 전국적으로 이름난 산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답죠. 계절마다 바뀌는 산의 모습도 큰 재산이에요. 봄의 산과 겨울의 설산은 전혀 다른 산이니까요.


4. 한국은 제주도 보유국


제주도는 단순히 바다만 보러 가는 섬이 아니죠. 자연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갖춘 섬이에요. 숲길(사려니 숲)을 걷고, 기생 화산(오름)을 오르고, 돌담이 낮은 제주도의 옛집들을 걸어요. 섭지코지의 바다가 다르고, 함덕의 바다가 다르고, 애월의 바다가 다르죠. 그 환상적인 바닷빛의 어울림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아요. 짙푸른 녹지에서 말이 풀을 뜯고, 늘씬한 해녀 할머니들이 테왁(물질할 때 몸이 뜨게 하는 공 모양의 기구)을 들고 나와요. 차라리 다른 세상이죠. 크지도 않은 한국이란 나라에서 서울과 제주도가 이토록 달라요. 아예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이 들 수밖에요.


5. 게다가 한국은 부산 보유국


제가 여행 중 외국 친구들에게 부산 사진을 보여 주면 그렇게들 좋아하더군요. 특히 태종대 신선바위 주변 사진이 한국 사진들 중에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부산은 진짜 한국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아련한 향수 같은 걸 불러일으켜요. 외국인들에게 서울은 다른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부산은 뭔가 원래 한국의 모습처럼 느껴지나 봐요. 실제로 부산을 다녀온 외국인 친구들 만족도가 상당히 높더라고요. 요즘엔 너무 세련돼서 개인적으론 서운하지만, 홍콩 안 부러운 야경은 입이 안 다물어지더군요.


6. 한국은 독보적으로 맛있는 나라


한국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싫증을 잘 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늘 새로운 메뉴를 찾고, 변화를 시도하죠. 외국인들에겐 양념 치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파격적인데, 그 양념 치킨에 모차렐라 치즈를 뿌리고, 마라 양념을 섞고, 치즈볼을 따로 팔면서 구매자들을 홀려요. 보통 점심은 간단히 먹는데, 한국은 그 점심시간에 한식, 분식, 중식, 일식, 베트남식, 이탈리아식, 미국식 중에 골라야 해요. 각 나라별로 세분화하면 끝도 없고요. 식탐의 집요함도 가히 독보적이죠. 게다가 인터넷의 잔인한 후기들 때문에 평균적인 수준이 엄청나게 올라갔어요. 다양함과 맛의 퀄리티에서 지구 어느 나라도 당해낼 수가 없게 된 거죠. 외국인 입장에선, 한국의 전통 메뉴부터, 신메뉴까지. 이걸 다 먹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게 가장 속상할 거예요.


7. 오지랖 넓은 한국인은 좀 치명적임


다른 기억 다 희미해져도, 사람 기억은 남아요. 그게 진짜 여행의 묘미고요. 한국은 오지랖의 나라예요. 타인의 옷차림부터 외모까지 함부로 지적하죠. 하지만 그게 여행자들에겐 엄청 매력적이에요. 외국인이 헤매면 그 꼴을 못 보죠. 영어가 안 돼도 도와주려고 해요. 외국인이 음식점에 오면, 맛있게 먹는지가 그렇게 궁금해요. 일부러 더 퍼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해요.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는 중이면 일단 앉으라고 해서 먹여요. 현지인들과 섞여서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시는 게 여행자로선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실 거예요.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자랑할 추억인 거죠. 한국의 시골을 며칠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은 한국 못 잊어요. 사람들이 눈에 밟혀서요.


현란한 한글로 가득한 맛집 골목에서 사진 찍기, 자전거 도로로 전국 일주 하기, 사찰에서 머물러 보기, 울릉도에서 제주도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에 놀라 보기, 눈 덮인 한라산 올라 보기, 아이디어와 감각이 남다른 펜션, 카페 둘러보기, 종류가 끝도 없는 전통주들 마셔 보기, 홍대 클럽에서 아침까지 미쳐 날뛰어 보기, 머드 축제, 재즈 축제, 록 페스티벌에서 한국 친구들과 어울려 보기 등등도 빼놓을 수 없죠. 한국은 이제 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는 없는 콘텐츠를 보유한 관광대국이에요. 자부심 느끼셔도 좋습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충분히 누리고 싶어요. 가지지 못한 걸 아쉬워하기 보다는요. 저에겐 시간이 있고, 손가락이 있고,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있어요. 이보다 충분한 삶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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