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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음식을 처음 먹었던 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더군요

by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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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뚜기 토마토케첩


아직도 기억나요. 탤런트 김자옥이 광고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생뚱맞다 싶은데, 케첩 넣고 깍두기를 담그면 훨씬 맛있다는 광고였어요. 어머니가 큰 마음먹고 케첩을 하나 사 오셨는데, 한 숟가락 먹고 그만 반해버렸지 뭡니까? 새콤한데, 아주 시지는 않은 부드러운 액체가 너무나 신비롭더군요. 어머니 몰래 케첩을 입에다가 한 번씩 털어 넣었어요. 튜브 용기가 아니라 유리병이라서, 몰래 먹는 것도 쉽지는 않았어요. 마음만 먹으면 한통도 앉은자리에서 먹겠더군요. 제가 그때 토마토를 정말 싫어했어요. 그 맛없는 토마토로, 어찌 이렇게 맛있는 케첩을 만드는 걸까? 참 신기하더라고요. 케첩 한 숟가락씩 입에 넣는 게 큰 낙이었어요.


2. 이렇게 느끼한 걸 왜? 오뚜기 마요네즈


'불타는 청춘'에 나오는 이연수 아시나요? 1980년대 이연수가 오뚜기 마요네즈 광고 모델이었어요. 샐러리에 마요네즈를 한 줄로 쭉 짜서 그렇게 맛있게 먹는 거예요. 저건 도대체 어떤 맛일까? 처음엔 너무 느끼하더라고요. 얼마나 살밍스러웠나 몰라요. 아, 이건 저 생소하게 생긴 채소와 같이 먹어야 하나 보다. 당시엔 흔하지도 않은 샐러리가 어느 날 우리 집에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마요네즈를 듬뿍 짜서 먹어 봤죠. 샐러리에서 하나도 달지 않은 쌍화탕 맛이 나더라고요. 한약에 마요네즈 조합이 맛있을 리가 있나요? 그땐 마요네즈라면 쳐다도 안 봤어요. 크면서 이상하게 마요네즈가 그렇게 또 좋아지더라고요. 첫 느낌은 돼지비계를 녹여서 유리병에 담아둔 것처럼 해괴하더니요.


3. 충격적인 발꼬랑 내 - 체다 슬라이스 치즈


여섯 살 쯤이었을 거예요. 전세 살 때, 주인집 영하 어머니가 노란색 색종이처럼 생긴 걸 먹어 보라고 주시는 거예요. 영하 어머니는 시어머니랑은 던지고, 부수면서 싸웠는데 저한테는 잘해 주셨어요. 부잣집에서 먹는 거니까 당연히 귀하고 비싼 거겠지. 신나서 받아 왔는데, 악취가 너무 심한 거예요. 지독한 발 냄새가 조그만 사각형에서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더군요. 밥에 비벼 먹으면 맛있다는데, 그럴 리가 없죠. 영하 어머니는 비위도 좋지. 발 냄새가 밥에 비벼도 발 냄새지, 꽃향기겠어요? 솔직히 발 냄새도 아니에요. 똥냄새였어요. 미국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딴 걸 만들었을까요? 원래 제 소원이 미국에 입양되는 거였는데, 그때 그 치즈에 충격받고 미국 환상이 와장창 깨졌다니까요.


4. 상한 걸 팔다니 - 의심스러운 새콤함, 요플레


아버지가 서울 우유를 배달하시다가, 빙그레 우유로 갈아타셨어요. 서울 우유는 커피 우유가 유명했고, 빙그레는 바나나 우유였죠. 빙그레가 프랑스 회사랑 제휴하고 '요플레'를 출시해요. 그렇다고 그게 우리 차지가 되는 건 아니죠. 엄청나게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상한 걸 판다고요. 떠먹는 요구르트란 것 자체를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요플레는 형과 내가 쌓아놓고 먹었어요. 처음에는 누가 토한 것 같은 더러운 맛이더라고요. 하지만 버리는 건 말도 안 되죠. 억지로 하나씩 까먹다 보니까, 이렇게 맛있는 게 또 없는 거예요. 덕분에 어릴 때 요플레는 남부럽지 않게 먹었네요.


5. 음식 쓰레기를 캔에 넣어서 팔다니 - 똠얌꿍


저는 똠얌꿍을 특이하게 영국에서 처음 먹어 봤어요. 중국 슈퍼마켓에서 캔으로 팔더군요. 한 푼이 아쉬운 거지였지만, 반 먹다가 버렸어요. 새콤함의 정체를 모르니까, 먹어도 되는 건지가 일단 의심스러운 거예요. 신기하죠? 반 먹고 버렸는데, 그걸 또 사 와서 먹어요. 이상하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태국에서 진짜 똠얌꿍을 먹고 얼마나 울컥했는지 몰라요. 캔으로 먹은 것도 그냥저냥 먹을만했으니, 얼마나 맛있었겠어요? 똠얌꿍이 진짜 태국 맛이죠. 다른 나라에는 없는, 태국 음식에만 있는 맛. 이 독특한 신맛은 라임, 토마토, 레몬 그라스, 갈랑갈(생강 사촌) 등에서 나오는 거예요. 이 시큼함에 빠지면, 약도 없어요. 태국 음식에 미쳐서 살아야 해요.


6. 홍콩은 지옥의 향이 어디서나 나더라 - 고수


고수를 처음 맛본 건 홍콩이었어요. 고수 향이 얼마나 지독한지 길바닥에서도 그 향이 나더군요.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지독한 향이 존재할 수가 있지? 하수구 고인물이 썩으면 이런 냄새가 아닐까 싶더군요. 홍콩 음식이 지긋지긋해서 마트에서 신라면을 사 왔는데, 거기서도 고수 향이 나는 거예요. 재래시장에서는 고수 향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쓰러질 뻔했어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거예요. 몇 년간 그 향 때문에 고생 좀 했죠. 멕시코에서 고수가 듬뿍 들어간 타코를 입에 넣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어요. 오바이트를 억지로 참았더니, 눈물이 막 나오더라고요. 지금요? 없어서 못 먹죠. 더 달라고 해서 먹어요. 고수가 들어가야 할 음식에 고수가 덜 들어가면 화가 다 나요. 저처럼 유난스러운 사람도 결국 좋아하는 걸 보면 시간이 약인가 봐요.


7. 교실을 초토화시킨 두리안


두리안은 영국에서 처음 먹어 봤어요. 말린 두리안이었어요. 어학연수할 때 같은 반 태국 친구가 말린 두리안을 가져와서 하나씩 나눠 주더라고요. 교실 안이 난리가 났어요. 일단 향이 악마의 입냄새더군요. 상한 고기를 잔뜩 먹은 악마의 목구멍에서 나는 구취가 교실 안을 휘덮는 거예요. 먹자마자 뱉는 아이들도 있었죠. 저는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 눈물 그렁이면서 삼키기는 했어요. 두리안 역시 그 냄새가 장벽이죠. 그 냄새에 익숙해지면, 부드러움과 달콤함에 눈을 뜨게 돼요. 동남아시아 어디에서나 두리안이 제일 비싼 과일이에요. 과일 천국인 나라들인데 왜 두리안이 가장 비쌀까요? 천연 카스타드 케이크니까요. 인공적인 단맛과 부드러움은 흉내도 못 내는 깊은 부드러움과 단맛이 나니까요. 네, 저도 환장합니다. 비싸서 자주 못 먹을 뿐이죠.


PS 매일 글을 씁니다. 누군가는 춤을 추고, 누군가는 파도를 타듯이 저는 글을 써요. 나는 글 아니면 못 살겠다.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고요. 그런 사람이고는 싶어요. 이거 아니면 안 된다. 그런 결의에 찬 사람이고 싶어요. 어쨌든 저는 글을 씁니다. 노래를 하듯, 춤을 추듯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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