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라고 달랐겠어요? 바락바락 싸웠죠. 그때는 그게 그렇게도 중요했어요. 지금요?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때 그렇게 얼굴 붉히면서 악을 썼던 장면만 부끄러울 뿐이네요.
1. 아하(A-ha)의 노래는 Take on me냐? Take me on이냐?
아하(A-ha) 기억하시나요? 저는 독일 밴드인 줄 알았는데, 오늘 검색하면서 노르웨이 밴드인 걸 알았네요. 아하의 테이크온미가 전 세계를 휩쓸 때가 있었죠. 뮤직비디오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창의적이었어요. 만화의 세계로 들어가서는, 만화 속 주인공과 만나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줄거리였죠. 중1 때 윤하랑 회택이가 제목이 테이크미온(Take me on)이라는 거예요. 제가 테이크온미가 맞다고 했죠. 얘네는 무슨 전생에 싸움개였나 봐요. 둘이서 잡아먹을 듯이 테이크미온이라는 거예요. 저렇게 게거품을 무는데, 계속 우길 수가 있어야죠. 결국 제 목소리가 낮아지더라고요. 내가 결국 맞았다는 건 사실 중요하지 않더군요. 시간이 지나면, 그래서 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저도 미친개처럼 같이 짖었어야 했어요. 아니면 시작을 말든가요. 그때 그 싸움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35년이 지났는데도 이름을 다 기억하냐고요? 윤하, 회택. 이 싸움닭들아! 테이크온미라고. 테이크온미이이이이!
2. 부모님이냐? 자식이냐? 혼자 패륜아가 된 사건
중학교 때였을 거예요. 윤리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부모님이 위급하다면 병원비로 쓸 것인가? 아니면 자식 대학 등록금으로 쓸 것인가? 이런 질문이었어요. 저만 빼고 모두 부모님 병원비로 써야 한다더군요. 저는 당당하게, 살 만큼 산 부모님 때문에 젊은 아이 미래를 포기하는 게 말이 되느냐? 아이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저의 의견을 소신껏 말했죠. 분위기가 싸해지더군요. 저런 놈도 아들이라고, 어머니가 미역국을 드셨을까? 이런 표정 있잖아요. 제가 결혼을 못해서 장담할 수는 없는데, 아이가 있다면 지금도 아이부터 챙겼을 것 같아요. 얼마나 다행인가요? 아이가 없어서, 패륜 짓 할 일은 없으니까요. 웃긴 게 가만히 있던 짝이 내 발표가 끝나니까 귓속말로, 너 졸라 멋있다. 이러는 거예요. 적당히 세상 눈에 맞춰서, 자신의 의견도 조정하는 게 나름의 처세술이었던 거죠. 그때 저는 좀 무모하게 솔직했던 거고요.
3 연대냐? 고대냐? 이런 거 말해도 되나?
삼십 년 전 이야기니까요. 지금 상황과는 무관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내내 연세대학교를 꿈꿨어요. 폼 나잖아요. 신촌, 안암동, 고대 오빠, 연대 오빠, 고대 농구부, 연대 농구부. 뭐든 연대 압승 아닌가요? 왜 고대 갔냐고요? 그때 배치표에서 연대가 1,2점 정도 높았어요. 재수를 했으니 안전빵으로 고대를 택했죠. 고연전 할 때도, 연대 애들을 노골적으로 힐끗댔네요. 고연전 할 때 오죽하면 잠실 경기장 연대 쪽으로 한 번 가봤다니까요. 그때 소름이 돋아요. 고대 응원석에 있을 때는 몰랐어요. 개떼처럼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고대가 그렇게나 멋있는 줄요. 일사불란 붉은색의 움직임이 예술의 경지더군요. 조금 떨어져서 봐야 진정한 아름다움을 안다니까요. 어느 대학이냐는 진짜 중요하지 않아요.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요. 대학은 결승골이 아니라, 출발점일 뿐이죠. 하지만 영화 속 대학생활을 꿈꾼다면 고대 추천합니다. 이런 학교 없어요. 선후배가 공업용 본드처럼 끈끈한 학교요. 지금은 많이 퇴색했다지만, 그래도 동시대 학교들과 비교하면 최고일 거라 확신해요. 학교 캠퍼스가 무지 예뻐요. 연대보다 훨씬요. 푸하하
4. 돼지고기 카레냐? 소고기 카레냐?
이때도 제가 얼마나 궁지에 몰렸나 몰라요. 집에서 돼지고기 카레를 해 먹는다고, 미개인 취급을 하는 거예요. 두 놈년이 쌍으로 저에게 달려드는데, 어찌나 서럽던지요. 돼지고기 카레는 먹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는 거예요. 대학생 때였어요. 이 논쟁이 좀 웃긴 게, 카레는 인도에서 왔잖아요. 인도는 힌두교를 믿으니 소고기 카레를 안 먹죠. 돼지고기도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지역만 빼면 안 먹고요. 그러니까 우리의 논쟁은 참 쓸데없는 논쟁이기도 하죠. 제가 또 한 집착하잖아요. 맘카페 한 곳 들어가서 봤더니,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쓰더군요. 그러니까 우리 집이 미개인 가족은 아니었던 거죠. 카레 고수들은 닭을 잘 활용하더군요. 원조 인도 사람에게까지 인정받으려면 닭고기를 써야죠. 염소 고기를 쓰든가요. 그때도 너무 무서워서, 소고기 카레에 일단 지고 말았네요. 좀 사는 것들이 핏대를 올리니, 미아리 서민 가정 출신 제가 너무 쫄리더군요. 너무 분해서 눈물이 다 핑 돌더라고요.
5. 아르헨티나냐? 브라질이냐? 엉뚱한 한일전
일본 친구 카즈마와 남미를 여행할 때였어요. 브라질과 비교하면, 아르헨티나에서 우리 신세가 너무 찬밥인 거예요. 브라잘에선 사람들이 진짜 친절했거든요. 인종차별 느낌이 아니라, 인종이 달라서 오히려 더 환영받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특이한 점은 있었어요. 브라질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아요. 카즈마가 일본어로 뭘 물으면 너무 퉁명스러운 거예요. 이민 2세, 3세라고 해도 부모님 나라에서 왔으면 반겨줄 만도 한데 말이죠. 반대로 한국인 이민자들은 저를 챙기더군요. 오오, 지금 생각해보니 카즈마는 그 부분에서 빈정이 상했을 수도 있겠네요. 카즈마는 아르헨티나가 좋다. 저는 브라질이 좋다. 각자가 좋다로 끝나면 되는데, 제가 발끈한 거예요. 인종 차별을 버젓이 하는데, 좋다는 말이 어떻게 나오느냐? 너도 공범이냐? 차별도 괜찮다는 거냐? 결국 저만 흥분하다가, 혼자 부끄러워져서 사과를 했네요. 너무 언성을 높였거든요. 카즈마가 사과를 해줘서 고맙대요. 나름 해피엔딩이었어요. 남의 나라 가지고 뭘 그렇게 흥분까지 했었을까요? 그렇게 아르헨티나를 미워했으면서, 형에게 가서 살라고 적극 권했다죠? 저란 인간 말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나라거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멀리 떨어진 따뜻한 나라에서, 소중한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게 신기해요. 그 모국어로 읽히고, 읽는 시간. 그러고 보니 인터넷이 없었다면, 저는 외국에서 이렇게 오래 떠돌지 못했을 거예요. 입으로든, 글로든 떠들어야 살아요. 저란 사람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