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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 가족이 주범이다

모든 가족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니 안 그런 가족이 훨씬 더 많겠지만

by 박민우

가스 라이팅(Gas lighting) 뜻 다들 알고 계셨나요? 전 최근에 알았어요. 심리적으로 다그쳐서, 상대방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거죠.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너는 수준이 그것밖에 안 돼?'

'내가 너에게 해준 게 얼만데'

'넌 그게 문제야. 그걸 꼭 누가 지적해 줘야 아니?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이런 이야기를 가족이나 애인, 친구에게 반복적으로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죽어 마땅해.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은 사라질 수밖에 없죠. 스스로 판단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돼요. 그들 말이 맞다면, 자신은 인간쓰레기니까요. 요즘 박수홍 가족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더군요. 박수홍 형이 박수홍이 번 돈 대부분을 착취했다는 뉴스더군요. 어떤 뉴스든 시간이 지나 봐야 알죠. 당장은 흥분된 목소리만 난무할 뿐이니까요. 하지만 연예인 가족이 모두 빌붙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가족들 논리는 간단해요. 누가 너를 이렇게 키워 줬는데. 이거 하나죠. 조금 유명해졌다고, 돈 좀 번다고 유세하냐? 내가 없으면, 넌 아예 없었어. 이렇게 몰아가면, 할 말이 없어요. 반항하면 패륜 자식이 되니까요. 자식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인데, 쪼잔하게 얼마를 썼는지, 얼마가 입금됐는지 꼬박 보고하라는 게 쉽겠어요?


삼자들이 볼 때는 답답하죠. 왜 저렇게 당하고만 살까? 성인이면 박차고 나올 수도 있어야지. 당하는 사람도 잘못이야.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 욕을 하게 돼요. 가스 라이팅 피해자들의 탈출이 말처럼 쉬울까요? 회사 생활하는 사람들은, 단체 생활하는 사람들은 바른말 잘하시나요? 불의를 보면, 따박따박 항의하시나요? 그렇게 안 되죠. 후폭풍이 두려우니까요. 피곤하니까요.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없던 일처럼 되니까요. 그래서 다들 쉬쉬하면서, 자기 할 일만 해요. 시선은 컴퓨터에 고정한 채요. 모든 관계는 그런 쉬쉬함이 기본이에요. 웬만하면 넘어가요. 진짜 못 참을 일이 생기면, 그때 몰아서 따지겠다. 이렇게 당장의 문제를 회피해요.


게다가 관계에 일방적인 건 없어요. 어떤 부분은 진심으로 고마워요.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볼까요? 어릴 때 친형이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해줬다 쳐요. 형은 그때 후유증으로, 신경계통에 손상이 와서 말도 어눌하게 해요. 그런 형이 자신의 수입을 관리해 주고, 하나부터 열까지 뒤치다꺼리를 해요. 얼마나 고마워요? 이보다 더 마음 편한 매니저는 없죠. 형이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목숨인데요. 그러니 칼같이 수입 보고를 통장 사본과 함께 해 주세요. 이런 말이 쉽게 안 나오죠. 나는 형 없으면 안 돼. 이런 마음이 자리 잡으면, 횡령이 의심스럽더라도 다른 이유로 겁을 먹어요. 횡령보다는 형의 부재가 더 두려운 거죠. 일거수일투족을 의지했으니, 잠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영영 안 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고요. 알아도 그냥 방치하는 거죠. 관계가 더 소중하니까요.


우리가 삼자로 봤을 때는, 모든 게 다 쉬워요. 무 자르듯이 자르면 돼요. 하지만 수십 년을 같이 보고,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자신의 팔다리를 자르는 것 이상의 결단이 없다면, 먼저 관계를 내려치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다고 노예와 흡사한 관계를 인정하는 건 더더욱 안될 말이죠. 가해하는 쪽 역시 가속도가 붙어요. 더 세게, 더 세게 궁지에 몰린 사람을 자극해요. 그래야만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과거와 단절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지금은 지금이에요. 고마운 사람도 망가지는 일이에요. 그러니 피해자도 공범이 되는 거라고요. 가족이든, 애인이든 진짜로 소중하다면 그들의 가학성을 알아채야 해요. 끊어야 해요. 안 고쳐진다면 잘라 내야죠.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해도, 비극의 결말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한 때의 고마움에 질질 끌려다녀선 안 돼요. 그건 한 때의 고마움으로 질질 끌고 가려는 이기주의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죠. 그럴 권리가 없어요. 사람에게도, 시간에게도 모독적인 행위거든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부족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좋을까요? 완벽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좋을까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듣고, 돕는 세상이 가장 완벽한 세상이 아닐까요? 부족한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등진 채 쓸쓸히 늙어가는 것보다는요.


PS 4월은 명상의 하루, 하루를 기록합니다. 서둘러 구독신청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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