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을 다니면 인생 여행지를 가장 많이들 물어보세요. 답하기가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답도 다르고요. 아예 세분화를 하면 어떨까?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대로 써봐요. 객관적이요? 그게 뭔가요? 우리 동네 고양이 밥에 섞어서 다 줘 버렸네요.
1. 비주얼 충격 1위, 조지아 메스티아와 카즈베기
메스티아는 엄청나게 엄청납니다
둘 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에요. 파키스탄 훈자,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캐나다 밴프 국립공원, 키르기스스탄의 장엄한 산들이 더 못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조지아 산들에게 가산점을 준 이유는, 이전의 엄청난 풍경을 실컷 봤다고 생각한 저에게, 충격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에요. 제가 알프스 쪽을 못 봤으니, 알프스를 보고 나면 또 답이 달라질 수 있겠죠. 두 곳의 산들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입이 딱 벌어져요. 메스티아에선 코룰디 호수(웅덩이임) 주변과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주룰디 산 정상이 어지러울 정도로 좋았어요. 카즈베기에선 주타 트레킹을 강력 추천합니다. 날씨만 깨끗하다면, 지구에 없는 풍경을 만날 수 있어요. 조지아는 급부상한 여행지지만, 여전히 저평가된 낙원이에요.
2. 멋지게 친절한 사람 1위,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은 정말 사랑스러워요
조지아 옆 나라 아르메니아. 이곳 사람들은 말도 못 하게 친절해요. 그런데 또 선을 넘지 않아요. 예의와 배려가 넘치는 친절함으로 이만한 나라를 못 봤어요. 터키인들의 무차별 학살로 전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민족이기도 해요. 유태인과 유사한 점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공감 능력이 뛰어나요. 당한 사람의 설움을 잘 이해한다고나 할까요? 질서 의식, 공중도덕 의식도 뛰어나서, 아르메니아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지더라고요. 한국인 입장에선 여전히 미지의 나라잖아요. 아르메니아와 이런저런 사업을 해보는 것도 강력 추천합니다. 살구, 와인 등이 유명한 나라예요. 가격도 굉장히 저렴하고요. 한국에 대한 호감도 역시 굉장히 높아서, 한국 관련 상품도 마케팅만 잘하면 승산이 크다고 봐요. 기회의 나라니까, 코로나가 끝나면 한 번쯤 방문해 보세요.
3. 와인이 가장 맛있었던 나라 1위, 아르메니아
의외로 훌륭했던 아르메니아 와인(사진 속 와인을 추천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호주 쉬라즈 와인이에요. 저에게 쉬라즈 와인은 감칠맛이에요. 미원 한 꼬집 넣은 맛이랄까요? 신맛이나, 떫은맛이 강하면 그땐 좀 노력해야 적응되더라고요. 아르메니아는 조지아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와인 나라예요. 여행 가이드가 데리고 간 곳에서 마신 와인은 형편 없었는데, 중급 식당에서 내놓는 와인들은 정말정말 맛있었어요. 우리나라 돈으로 한 잔에 2천 원 정도 하더라고요. 이 가격에 이런 와인은 절대 마실 수 없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게다가 꼬냑도 엄청 유명한 나라예요. 조지아가 와인으로 더 유명하지만, 전 아르메니아에서 인생 와인을 만났네요. 아르메니아에서 맛있는 와인을 찾아 보세요.
4.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 1위, 파나마 산블라스
바다는 물빛이죠. 따뜻한 바다의 연한 연둣빛, 하얀 백사장,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껑충한 야자수들. 파나마의 산블라스가 딱 그런 곳이에요. 작은 섬들이, 한 가득 야자수를 머리에 이고 있어요. 거대한 잔디 인형처럼요. 산블라스에 가게 되면, 그런 섬들 중 한 곳에 머물게 될 거예요. 저는 무조건 싼 곳이어야 해서, 잠자리는 열악했어요. 바닥에서 게도 나도 나오고, 바퀴 벌레도 나오더군요. 무릎까지 차는 얕은 물에도,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바글바글해요. 스쿠버 다이빙을 하지 않아도, 다양한 수중 생물들을 손쉽게 볼 수 있어요. 밤이면 쏟아지는 별, 고요하게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잠이 들죠. 카리브해는 우리에겐 영화로(캐러비안의 해적들), 에버랜드에 있는 테마 파크(캐러비안 베이)로만 알려져 있죠. 카리브해의 진수를 파나마에서 꼭 한 번은 느껴 보세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담아올 수 있을 거예요.
방송 때문에 방문했던 곳인데,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더군요. 해파리는 독침이 있어서,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인도네시아 카카반섬의 해파리들은 독침이 없어요. 세계에서 딱 두 곳만, 독침 없는 해파리가 산대요. 그중 하나가 카카반 섬인 거죠. 제가 갔을 땐, 저밖에 없더군요. 물속이 온통 해파리 천지인 거예요. 한 마리만 봐도 신기할 텐데, 그냥 물 반, 해파리 반이에요. 원래는 바다였다가, 지각 변동으로 바다에서 분리된 섬에 해파리들이 고립된 거죠. 진화를 거듭하면서, 보통의 해파리들과는 다르게 독성이 사라진 거고요.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해서 지구를 떠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구 안엔, 지구일 수 없는 풍경이 이렇게 숨어 있으니까요. 해파리들이 부드럽게 내 몸과 손발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이 꿈만 같았어요. 여러분도 저와 같은 감동을 느껴 보셨으면 좋겠어요. 아시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큰 행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6. 살고 싶은 도시 1위 -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와 바로 옆 작은 마을 소살리토, 둘 다 보자마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어요. 완만한 언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도로 양쪽엔 깨끗한 단독 주택들이 늘어서 있어요. 구닥다리 전차가 장난감처럼 도시를 가로지르고요. 사람들도 늘어진 듯 평화로워요.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들만 모아 모아서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미국에서도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 중 하나예요.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가 봐요.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1년에 한두 달은 이곳에서 글도 쓰고, 산책도 하면서 보내고 싶어요. 가장 이상적인 주거지란 이런 곳이 아닐까? 날씨, 풍경, 음식, 사람이 월등했어요. 가장 축복받은 땅이라는 미국의 장점이 이곳에 모두 결집된 것처럼 보였어요.
7. 가장 매력적인 겨울 1위,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는 남미의 남쪽에 길게 펼쳐져 있는 지역을 뜻해요.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양분하고 있죠. 파타고니아는 트레킹 맛집이에요. 기묘한 색의 깨끗한 호수와 설산, 흔하게 볼 수 없는 동식물들이 여행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죠. 그리고 거센 바람으로도 유명해요. 바람 소리를 귀로 들어가며, 아늑한 호텔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세요. 커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가장 매력적인 겨울 풍경이 그곳에 있죠. 영하로 떨어지는 매서운 추위는 또 아니라서, 산책하기에도 바람직한 정도예요. 바람이란 게 어찌 보면 비호감일 수 있는데, 파타고니아의 바람은 이유가 있는 서사시처럼 뭔가 웅장해요. 칠레도, 아르헨티나도 와인 유명한 거 아시죠? 여유 좀 되시면, 사방으로 뚫린 호텔에서 반신욕 하면서 와인 한 잔 해보세요. 가장 지혜로운 사치가 아닐까 싶네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삶에 여행이 빠지면, 참 많이 서운하죠. 일상을 여행으로 채우자. 추억을 복기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죠. 내 안의 추억으로, 오늘을 여행합니다. 코로나 시대,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