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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Apr 30. 2021

중년의 사고를 청년모드로 바꿔 보겠습니다

우리의 인식은 쉽게 늙어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살아온 환경이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죠. 대부분은 그 인식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세대 차이라는 것도 생기는 거고요. 다른 시대에 태어나면, 다른 사고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라테는 말이야'가 시도 때도 없이 남용되는 거죠. 이런 건 나도 고쳐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젊은 친구들의 생각이 일리가 있고, 바람직한 건 당연히 배워야죠. 안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마냥 쉽지는 않아요. 이전 생각대로 사는 게 편하거든요. 그래도 노력하고 싶어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망도 굳이 숨기지는 않을게요. 그것 보다는, 내 뇌에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어서가 먼저예요. 반복을 선택하면, 뇌는 활성화를 중지하고 노화에 집중할 테니까요. 저의 사고방식은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노력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1. 음주 운전은 개쓰레기들이나 하는 짓이다. 매일 세 번 이상 복창합니다


네, 부끄럽지만 우리 어릴 때는 안전벨트도 안 맸어요. 공익광고에서 뒈지기 싫으면 안전벨트 매라. 주야장천 나오지 않았다면, 그냥 안 했을 거예요. 안전벨트도 답답해하던 사람들인데, 음주 운전이야 말해 뭐하겠어요? 음주 운전이 기본값이었어요. 술을 마셨다고 대리를 불러요? 꽐라가 되어도, 집만 다들 잘 찾아갔어요. 그러다 사람 죽으면요? 그러면 그냥 운이 나쁜 사람이었던 거죠. 그러니 음주 운전으로 뉴스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며 얼마나 분노가 되겠어요? 같이 분노는 하는데, 연기가 가미된 분노였죠. 우러나지 않는 비난을 했어요. 하지만 음주 운전으로 심각한 사고들이 계속 일어나니, 저부터 웃음기가 사라지더군요. 살인행위니까요. 술 마시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꼰대 마인드로 살인을 눈감아 주던 사람이었음을 반성합니다. 저는 면허 자체가 없어, 음주 운전을 하라고 해도 못 하지만, 이젠 누구라도 음주 운전을 하면 쌍욕을 날리겠습니다.


2. 동물도 가족, 사람 목숨 못지않음을 명심하겠습니다  


개와 고양이를 방에서 키우는 사람이 희귀할 때라서요. 남은 밥, 생선 대가리 챙겨 주면 자비로운 주인이었던 때라서요. 개나 고양이가 이렇게까지 소중한 존재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어요. 길거리 개들이 교미하면, 뜨거운 물을 부어서 쫓아내는 집이 그렇게 많았어요. 어디서 감히 망측한 짓거리냐고요. 배를 뻥뻥 걷어차는 개 주인들도 많았고요. 고양이는 소름 끼친다며 멀리하는 사람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았어요. 고양이, 개 사진만 보면 우쭈쭈,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지금의 사람들과 아예 다른 인종이었어요. 개 안 잡아먹으면, 그나마 인도적인 개 주인이었죠. 여름 복날 야구 방망이로 내리쳐서 보신탕을 해 먹는 집이 정말 많았어요. 잔인하게 죽여야, 더 맛있다는 소름 돋는 논리로요. 누군가에겐 이제 사람보다 더 소중한 진짜 가족임을 알아요. 나에게 해코지할 일 없는, 사기칠 일 없는 친구니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인간관계를 동물로 확장한 젊은 세대들의 감수성에 많은 걸 배웁니다.


3. 물결 표시의 남발은 늙음의  상징임을 외우겠습니다


~ 이거 많이 쓰면, 아재 냄새 폴폴 난다는 말에 충격받았습니다. ㅋㅋㅋ, ㅎㅎㅎ, ㅠㅠ. 이런 것도 젊은 사람들은 자제한다면서요? 예쁜 이모티콘 놔두고, '클래식한' 표현을 남발하면 세대 차이 느낀다면서요? 우리는 이런 것조차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어요. 하하하, 크크크 대신에 ㅎㅎㅎ, ㅋㅋㅋ를 쓰는 게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르시죠? 물결 표시가 어때서요? 나름 수줍음과 여백을 강조한 문학 정신을 이해 못하시겠어요? 젊은 척 이모티콘 쓰고 싶지 않은데, 참 사람 간사하더라고요. 나이에 맞는 표현이 최고 아닌가요? 그런데 저란 인간 그렇게 얄팍할 수가 없어요. 이상하게 덜 쓰게 되더라고요. 이모티콘 찾아서 올리는 게 귀찮은데, 그걸 또 굳이 해요. 에효. 젊게 산다는 말을 그렇게라도 듣고 싶은가 봐요.


4. 말 줄이기 못 알아들으면 쉰세대라고요? 노력하겠습니다


말 줄이기가 우리 때 없었던 건 아니에요. 옥떨메가 대표적이었죠.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못 생긴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어요. 저보다 조금 윗세대들은 청통맥이란 단어를 즐겨 썼죠. 청바지, 통기타, 맥주를 뜻했어요. 청바지, 통기타, 맥주가 젊음을 상징했거든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가 '토토즐'이 되고, '별이 빛나는 밤에'가 '별밤'이 됐죠. 그래도 지금처럼은 본격적인 줄임은 없었어요. 깜놀, 금사빠, 안습, 알못, 버카충. 이 정도 알면 꽤 아는 편 아닌가요? 깜짝 놀라다.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 안구에 습기가 찬다(눈물), 버스 카드 충전기. 제가 맞게 알고 있나요? 이런 단어들도 이제는 늙은 단어들이죠. 기본적으로 자음만 쓰는 시대더군요. ㅊㅋㅊㅋ(축하축하), ㅅㄱ(수고),  ㅎ2(안녕하세요) 등이 있겠네요. 왜들 그렇게 줄이는 겁니까? 이유가 뭔가요? 나이 먹은 세대들은 지나가 주세요. 젊은 세대들끼리 암호 놀이인가요? 자판 제대로 두들기는 게 귀찮아서인가요? 새로운 단어들이 생길 때마다 열심히 공부는 하고 있는데, 너무 많이 생겨나니까, 따라가기가 버거워요.


5. 환경 사랑은 기본 중의 기본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환경 중요한 거야 알죠. 알다 마다요. 그런데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 환경 걱정은 배부른 소리였어요. 뜬구름 잡는 소리 같기도 했고요. 요즘 친구들을 보면, 지구가 아프면, 본인도 아프더라고요. 버스 창밖으로 꽁초도 버리고,  쓰레기도 버리고 했던 우리들이라 사실 공부가 필요해요. 나에게만 피해 안 오면 된다.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죠. 환경을 생각한 재활용 가방, 옷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면서요? 저 사실 조금 감동했어요. 진심인 거잖아요. 그 진심으로 소비를 하는 거고요. 우리 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개념이에요. 제가 태국에 사는데, 이 나라도 분리수거를 거의 하지 않아요. 비닐봉지에 쓱쓱 묶어서 버리면 끝이에요. 영 찜찜하고, 미안한 게 아니에요. 마음만은 분리수거를 강력히 원한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6. 주먹 만한 얼굴, 빗살무늬 턱이 대세라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얼굴이 타조 비율이면 아니, 초식 공룡 바로사우루스 크기면 황금 비율이란 소리를 듣더군요. 머리 크기에 집착하는 끝판왕 민족이 한국인이 아닐까 싶어요. 성형으로도 안 되는 머리통 크기가 가장 큰 부러움인 거 맞죠? 거기에 땅도 팔 수 있을 정도의 뾰족한 턱까지 가지고 있으면 금상첨화고요. 그래서 돌려 깎기라는 걸 한다면서요? 제 눈에는 그게 되려 이상해 보여요. 당연한 거죠. 미의 관점은 세대마다 다르니까요. 마를수록, 얼굴이 작을수록, 팔다리가 길수록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걸 알고는 있을게요. 어플로 비율 고치고, 진짜 본인 맞나 싶은 사진 올리는 것도 화장처럼 당연한 거라는 것도 외울게요. 진짜 얼굴도 내 얼굴이고, 뽀샵으로 다 뒤집어 놓은 얼굴도 내 얼굴이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는 거 맞죠? 맨얼굴에 우중충한 피부가 진짜 얼굴이다. 이런 촌스러운 주장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7. 안전한 삶은 선, 불안한 삶은 악 -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세계관을 존중하겠습니다


도전을 권하지 않는 시대더라고요. 도전하다 망하면 책임질 거냐?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맞다. 공무원 삶이 최고다. 지루해도 연금만 믿고 끝까지 버티자.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 때보다 훨씬 많아진 거에 대해서, 관심 있게 지켜볼게요. 그만큼 안전, 일상, 평균적인 삶이 어려워졌다는 걸 의미하는 거겠죠? 꿈이 작아진 게 아니라, 꿈이 어려워진 거라고 이해할게요. 재미있는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모험은 너무 치명적인 거겠죠? 어떤 선택도 빛과 그림자는 있는 법이니까요. 그 선택이 최선의 행복이 되기를 응원할게요. 저는 안전한 삶과 극단적으로 반대에 있어서, 좀 송구하기는 하네요. 세상을 떠돌며 글을 쓰는 삶이라서, 이 위태로움이 눈치가 보여요. 꿈은 커서 미화되어도 안 되고, 작아서 무시되어서도 안 되죠. 단 모험을 하는 친구를 적대시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다양한 삶을, 따뜻한 마음으로 봐주는 아량은 충분히들 갖고 계실 테니까요.


PS 매일 글을 씁니다. 우리가 아픈 건, 고립감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같이 아프다. 같이 버틴다. 같이 불완전하다. 그런 느낌을 드리고 싶어서, 부족한 사람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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